커뮤니티

일 앞에 당당한, 그녀는 예뻤다

2024-04-02

문화 문화놀이터


정책주간지 K-공감
일 앞에 당당한, 그녀는 예뻤다
'옛 그림이 전하는 지혜'

    4월이 온다. 미적미적 버티던 겨울도 봄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계절에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꽁꽁 언 겨울은 봄의 생명을 이길 수 없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나물이다. 언제 당도했는지 논두렁에는 쑥, 달래, 냉이 등이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내민다. 쑥 캐러 갈 시간이다. 겨울을 이긴 여린 잎을 캐 된장을 풀어 심심하게 끓이면 쌉싸름한 맛이 눈부시다. 아침상에 쑥국을 올리면 비로소 봄이 우리 집에도 찾아온다.
    윤용(尹?,1708~1740)의 ‘나물캐는 여인’은 이맘때 보면 딱 좋은 작품이다. 40여 년을 본 작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뒤통수까지 예쁘다더니 그 말이 맞다. 호미에 망태기를 든 아낙네는 얼굴 대신 뒤통수를 보여준다. 머리에는 수건을 쓰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붙였다. 걸리적거리는 치맛자락은 허리춤에 쑤셔넣고 속바지는 무릎까지 끌어올려 질끈 묶었다. 그 바람에 튼실한 장딴지가 건강하게 드러난다. 짚신은 벗겨지지 않게 들메끈으로 묶은 것이 꼭 샌들을 신은 것 같다. 그녀처럼 장딴지가 두꺼워 치마를 입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감을 얻었다. 20대부터 하이힐 대신 ‘여포화(여자를 포기한 신발)’를 신으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그림의 영향이 크다.

 
‘사녀도’, ‘미인도’의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사녀도’, ‘미인도’의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에서 정면 대신 뒷모습을 그린 사례는 많지 않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더욱 희귀하다. 남성들이 그린 여성의 모습은 흔히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돋보이는 사녀도(仕女圖)가 많다. 사녀도는 왕비나 궁녀 혹은 상류층 부녀자들을 그린 그림이다. 요즘 같으면 영화배우나 모델을 그린 그림과 유사할 것이다. 사녀도는 화려한 색채와 잘 꾸민 모습에서 보기는 좋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개성이나 실재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성형미인들처럼 그 얼굴이 그 얼굴 같다. 사녀도는 조선 후기에 기생을 모델로 그린 미인도로 전환된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표적이다. 사녀도 혹은 미인도는 아름다운 여인을 드러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니만큼 곱게 단장한 얼굴을 강조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물캐는 여인’은 뒷모습이다. 의상 또한 거의 무채색이다. 그림 속 아낙의 모습은 사녀도나 미인도를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봄날에 나물 캐기 위해 나선 아낙네의 실제 모습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현장감이 더 느껴진다. 특히 옆으로 세워 꽉 잡은 호미는 금세라도 앞으로 걸어가 나물을 캘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저 호미 날이 밑으로 처져 있다고 상상해보라. 생동감은 사라지고 아낙네가 할 일 없이 멀뚱히 서서 들판을 바라보는 모습이 될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윤용은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다. 특히 조부인 윤두서에서 부친인 윤덕희로 이어진 그림재주를 물려받아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젊은 시절에 병을 얻어 33세로 요절했다. 82세까지 장수한 아버지 윤덕희는 26년 동안이나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해남의 녹우당에는 그의 후손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
    요즘도 그림 속 그녀처럼 일하는 여성들이 많다. 호미를 들고 달래와 냉이를 캐는 대신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일한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이다. 날마다 출근하면서 무슨 옷을 입을까,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화장하지 않은 얼굴도 예쁘다. 무채색 옷을 입고 굵은 장딴지를 드러내도 아름다운 ‘나물캐는 여인’처럼 자신의 일에 당당한 사람은 맨얼굴도 예쁘다. 아니 뒤통수도 예쁘다. 그러니 자신있게 뚜벅뚜벅 걸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