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견 서방과 견공
'글. 최명임'

어머니는 개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나 살가운지 마당에 적을 둔 견 서방으로 여기신다. 동지섣달 긴긴밤엔 한뎃잠이 서러울까 봐 이불을 넣어주고, 날 새기 바쁘게 밤새 언 몸을 녹이라고 뜨거운 물을 갖다 준다. 염천 여름엔 견 서방의 초막 위에 그늘막을 치고, 산고 치른 그의 아낙에게는 미역국을 들이민다.





어쩐 일인지 견 서방은 어머니가 넣어 준 이불을 패대기치고 밥그릇은 뒤집어엎기 일쑤다. 반항의 극치인 듯 발톱이 빠지도록 땅을 파헤치기도 한다. 그의 아낙이 출산하던 날도 구덩이를 파고 핏덩이를 거기 숨겨두었다. 어미가 죽은 듯이 숨어있어야 산다고 언질을 주었을 텐데, 낑낑거리는 소리에 우린 어이없는 지경을 보게 되었다. 저들의 역사에 개입한 인간의 야만성을 낱낱이 기억이라도 하는 것일까.
쇠털같이 많은 날을 오라에 묶인 채 야성이 몸부림을 친다. 어떤 날은 목줄을 끊고 달아나 치솟는 객기로 반항하는데 억센 손길에 붙들려 다시 목줄을 찰 때면 내 목에도 밧줄이 감긴 듯 갑갑해진다. 그리고 나는 가끔 어머니 말씀을 흉내 낸다. ‘ 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하누.’ 우리 인생도 창살 없는 감옥이라 어머니는 동병상련의 아픔에서 우러나온 짠함으로 한 말씀일 거다.
문제는 그런 견 서방의 심사를 매번 자극하는 일이 있다. 집 앞 야산에 떠돌이 개가 예닐곱이나 되는 식구를 데리고 자주 눈에 띈다. 가끔 우리 집 닭이 횡액을 당하는 데 저들의 짓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한다. 목줄을 풀고 탈출하여 무리를 이룬 것 같은데 동가식서가숙하는 처지에 새끼까지 딸려있다. 영혼까지 집시를 닮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거침없는 행보가 자유를 누리는 것은 분명하다. 역마살도 없는데 나도 가끔 일상을 훌훌 벗어던지고 저들처럼 유랑객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집시 견 무리는 앞산 둔덕에서, 견 서방은 처마 밑에서 마주 보고 자주 논쟁을 벌인다. 그들이 컹컹하고 서론을 펴면 우리 견 서방도 만만치 않다. 쟁점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견 서방의 근본은 본래 산천을 누비던 늑대인데 인간의 처마 밑에 붙들렸으니 그 구속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부터 하지 않았을까.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하라-’ 며 슬쩍 심기를 건드렸을 거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우리 견 서방은 못내 착잡하여 먼 산을 올려다보고 있다. 한바탕 동네가 시끄럽도록 논쟁을 벌이다가 가지만, 내일이면 또 다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난 그들의 진짜 속셈을 읽으려 해도 감이 오질 않는다.





남편은 하루에 한 번꼴로 견 서방의 오라를 풀어 준다. 질풍같이 산과 골목길을 내닫는 기세가 몽고군의 말발굽보다 빠른 듯싶다. 숨어있던 고라니들이 제풀에 놀라 우왕좌왕 도망가는데 붙들어 오는 일은 없다. 그리고 꿋꿋이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목을 내민다. 견 서방은 절대 안전 주의자인지, 오랜 시간 길들어 야성을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지인이 기르던 견공을 어머니께 맡기러 왔다. 그전에는 사람의 품에서 어르고 키워 호강하고 살았겠지만, 우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실내에서 키울 수가 없었다. 졸지에 마당으로 내려앉아 견 서방이 되었다. 며칠 사이 쑥대머리에 검불을 뒤집어 쓴 채, 퀭한 눈빛까지 행색이 말이 아니다. 우리 견 서방이 위로한답시고 한마디 하자 쌩하고 짖는다. 견생도 격이 있다는 듯?. 사람 손에서 놀던 견공이라 사람 흉내를 낸다.
견공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들리는 말로는 나라가 발칵 뒤집힌 사건의 발단에는 일개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 견공은 개망신에 주인도 나라 망신을 당하였다. 멍첨지도 염치가 있으면 고해성사라도 볼 일이거늘, 다행하게도 저를 빌미로 사건의 내막이 터졌다니 밥값은 제대로 치른 셈이다.
그녀의 삼일천하가 막을 내린 뒤 키우던 견공의 근황이 궁금하다. 아직도 뒷손의 보호 아래 있는지…. 혹, 깨달은 바 있어 다 버리고 초야로 떠났을까. ‘의롭지 않은 부귀영화는 한낮 뜬구름이라.’ 옛사람 말을 빌려 그럴싸하게 뱉어 놓고 말이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쓸고 간 뒤에 사람들은 멍첨지를 떠올리며 기가 차서 웃었다.
개 팔자 뒤웅박 팔자라 견 서방으로 전락한 우리 집 객 견도 한동안 방황하다 제 본분을 되찾았다. 어머니는 주인답게 과거지사를 개의치 않고 공평하게 사랑하고 먹이를 들이민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즐거움이 그 안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 견 서방이야말로 상팔자인 것 같다. 때때로 오라를 풀어주면 숲을 누비며 자유를 맛보고 어머니 덕에 제 식솔들 넉넉하게 건사하고 어머니 사랑까지 차지하고 앉았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저 흉흉한 바람 소리 저도 들었을 터이니 오늘 밤은 이불을 챙겨 덮고 숙면에 들었으리라.
나의 잠자리도 한동안은 훗훗할 것 같다.

EDITOR 편집팀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우리 숲 이야기 공모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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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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