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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의 추억과 옥화9경의 이야기 속으로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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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행
정월대보름의 추억과 옥화9경의 이야기 속으로
'물의 나라 충북 ? 청주Ⅱ'

    정월대보름은 마을이 들썩이던 큰 잔칫날이었다. 대보름 전날부터 대보름날까지 놀이는 이어졌다. 절정은 온 동네를 비추는 정월대보름달을 맞이하는 달맞이였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굽이치는 미원천과 달천의 풍경 아홉 곳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 옥화9경이라고 했다. 달빛 여울이 좋았다던 천경대에도, 가을 달을 맞이했다던 추월정도 정월대보름 달빛이 비추기를 바랐다. 세상 사람들의 소원이 깃드는 정월대보름달은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밝고 크다. 대청호반 설원 위 낮달도 좋겠고, 문의문화재단지 초가지붕을 덮은 하얀 눈 위에서 반짝이는 달빛도 좋겠다.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
 
고향 같은 옛 마을, 문의문화재단지에서 정월대보름을 생각하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산굽이를 돌아 흐르는 물줄기를 보는데 그 말이 생각났다. 산골짜기 계곡물이 마을을 지나며 시냇물이 된다. 여울물 소리가 지난 날 마을에 있었던 이야기를 수런대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게 마을을 지난 냇물은 강물이 된다. 큰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 
    실핏줄 같은 작은 물줄기가 냇물이 되고 강이 되어 모이는 대청호는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고 비상하는 용의 형국이다. 그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문의문화재단지가 있다.
    문의문화재단지는 대청댐 수몰 지구에 있는 문화재와 지역의 문화재를 옮겨 지은 곳이다. 옛날에 이 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초가와 기와집, 고인돌, 대청호가 보이는 전망대 등을 거닐고 추억을 떠올리며 산책하기에 좋다. 
    문의문화재단지는 정월대보름의 추억을 풀어놓기에도 좋은 곳이다. 초가지붕을 덮은 눈은 풀 먹인 홑청으로 감싼 솜이불 같다. 초가지붕 처마에 발처럼 매달린 고드름이 햇볕에 영롱하다. 고드름을 따다가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겠다는 동요 노랫말이 생각났다. 울타리가 된 키 작은 나뭇가지에도 눈이 소복하다. 흙벽에 소쿠리와 키가 나란히 걸렸다. 광에 놓인 멍석이며 가래, 쟁기에서 새봄의 객토를 떠올렸다. 동네 꼭대기에 올라 초가와 기와집이 어울린 옛 동네가 대청호를 굽어보고 있는 풍경을 본다. 
    문의문화재단지 부근에 ‘조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불당골, 부수골, 터밭, 아래장터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조동’이라 했다. 마을에는 60여 가구가 살았다. 청주시내에서 들어오는 버스의 종점이 있었다. 동네 가운데 과수원이 있었는데, 울타리가 탱자나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탱자나무과수원’이라 불렀다. 지금 마을의 대부분은 대청호 물 아래 있다. 문의문화재단지 정문으로 가는 길옆에 있는, ‘조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걸 알리는 비석이 아프다. 


 
정월대보름에 우리는 
    문의문화재단지 초가지붕 처마에 줄지어 매달린 커다란 고드름은 추억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였다. 옛날 정월대보름은 마을의 큰 잔치였다. 대보름 전날부터 대보름날까지 이틀 동안 잔치는 계속 됐다. 대보름 전날은 나무 아홉 짐을 하고 아홉 끼를 먹는 날이라는 말이 있다. 아궁이를 달굴 장작을 미리 많이 해놓고 밥도 넉넉하게 했다.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무쳤다. 
    집으로 들어오는 액을 막고 집안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팥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놓아두었다. 조상을 모신 신줏단지, 집을 지키는 성주, 집터를 지키는 터줏대감, 부엌을 지켜준다는 조앙신, 뒷간을 지키는 신, 장독대를 관장하는 신, 사람들은 그들을 살갑게 여겼다. 종교가 아니라 생활이었다.     
밤이 되면 친구네 집에 모여 밤새 놀았다. 출출해지면 이른바 ‘밥서리’에 나섰다. 여러 친구네 집을 돌며 부엌에 몰래 들어가 밥과 나물을 큰 바가지에 담아 나왔다. 고요한 시골 겨울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모를 리 없었지만 어른들은 모른 체했다. 대보름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도 있었다. 졸음을 참다 먼저 잠든 친구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놓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한 해 동안 부스럼 없이 건강하게 지내게 해달라는 뜻으로 부럼을 깨물었다. 보통 견과류를 깨물었는데, 아이들은 사탕을 깨물기도 했다. 깨문 부럼은 다 먹지 않고 일부를 마당이나 들판에 뿌렸다. 겨우내 먹을 것 부족한 날짐승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귀밝이술도 한 잔씩 했다. 귓병이 나지 않고 귀가 밝아진다고 믿었다. 좋은 소식 많이 들리게 해달라는 소원도 담겼다. 이날 아침에는 김치를 먹으면 몸에 쐐기가 일어 따끔거린다는 속설이 있어서 김치를 밥상에 올리지 않는 집이 많았다. 마을마다 복조리를 파는 사람이 있어서 집집마다 돌며 복조리를 팔기도 했다. 
    아침상을 물리고 햇살이 퍼지면 동네는 아이들 세상이었다. 어른들이 널을 만들어주면 여자아이들은 널을 뛰고 놀았다. 엄마가 설빔으로 해준 빨강치마 노란저고리를 입고 댕기를 매고 널을 뛸 때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들판에 모인 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고개를 젖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연을 보았다. 연줄 끊기 놀이도 했는데, 연실에 사기가루를 발라 상대편 연줄을 쉽게 끊기도 했다. 윷놀이는 아이 어른 가리지 않는 정월대보름 전통의 놀이였다.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같았다. 정월대보름달이 떠오르면 사위는 숙연해졌다.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다. 
    이틀 동안의 정월대보름 잔치는 이렇게 끝났다. 몇몇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냇가에서 쥐불놀이를 했다. 철사로 묶은 작은 깡통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불을 지펴 크게 원을 그리며 깡통을 돌렸다. 하늘 높이 깡통을 날리면 불꽃이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다.  


 
청남대전망대에서 본 대청호 통쾌한 풍경, 그리고 미원천을 따라 길을 오가다 
    청남대전망대로 가는 길 초입에 ‘대통령길(전망대)입구’라는 문구가 적힌 아치형 문이 있다. 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 전망대 쪽으로 걷는다. 전망대 가는 길에 청남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배밭과 행운을 기원한다는 645계단을 지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통쾌하다. 사방으로 시야가 터진다. 몸을 돌려 바라봐야 그 풍경을 다 볼 수 있다. 이름 모를 산줄기들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풍경, 대전시 신탄진과 대청댐, 구룡산에 안긴 현암사의 풍경, 문의문화재단지를 품은 양성산까지, 발아래는 청남대의 숲이 대청호와 어울린 풍경이 펼쳐진다. 
    날이 꽤 흐르고 다시 찾은 충북의 물길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9경과 달천으로 흘러드는 미원천이었다.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과 상당구 미원면의 경계인 구녀산에서 미원천의 물줄기가 시작된다. 구녀산 북사면에 떨어진 빗방울은 금강이 되고, 남쪽 산비탈에 떨어진 빗방울은 한강이 된다는 말이 있다. 구녀산에서 시작된 여러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용곡저수지다. 저수지를 지난 미원천은 미원면소재지를 지나며 돛대 형상의 조형물을 남겼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미원의 지형이 배가 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보통 같으면 솟대를 세워야 할 곳에 돛대를 세워 땅의 기운을 돕고자 했다. 돛대 조형물은 원래 미원 장터에 있었는데 도로가 새로 나면서 지금의 자리인 미원천 옆으로 옮겼다고 한다.       
    미원의 옛 이름은 ‘쌀마을’이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옛날에 온 나라가 가뭄으로 고생할 때 미원에서는 벼농사가 잘 돼 집마다 쌀을 쌓아두었다고 해서 ‘쌀마을’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쌀마을’이 ‘쌀안’이 되고 ‘쌀안’이 ‘미원’으로 바뀐 것이다. 옛날에는 마을 장터도 ‘쌀안장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쌀안(미원) 돛대 조형물을 지난 미원천은 미원면 운암리에 이르러 옥화9경 중 1경인 청석굴을 만나게 된다. 


 
옥화9경을 비추는 정월대보름달을 생각하다 
    굽이치는 미원천과 달천의 풍경 아홉 곳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 옛 사람들은 옥화9경이라고 했다.
    제1경 청석굴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찍개, 볼록날, 긁개 등이 발견되면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던 동굴로 알려졌다. 지금은 멸종위기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황금박쥐와 함께 관박쥐 30여 마리가 산다고 한다. 청석굴을 보고 청석굴스카이전망대에 올랐다. 계단을 오르며 나뭇가지 사이로 미원천 물줄기를 보았다. 여름이면 보지 못할 풍경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미원천과 운암리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석굴 앞을 지난 미원천은 달천을 만나 달천이 된다. 제2경 용소부터 달천의 풍경이 이어진다. 용소의 옛 이름은 자라가 산다는 연못이란 뜻의 오담이었다. 용소 물속에 뿌리를 내린 절벽에 퇴적, 습곡, 융기의 흔적이 역력하다. 청석굴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생각하면 용소의 절벽 문양은 용의 비늘에 긁힌 흔적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다.
    제3경 천경대는 달천에 비친 달을 보고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맑은 날 한낮 천경대에는 산과 나무와 햇볕이 비치고 있었다.     
    제4경 옥화대는 만경정, 세심정, 추월정 등 세 개의 정자가 있는 달천의 풍경을 이르는 이름이다. ‘가을달’을 맞이한다는 추월정, 스스로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은 달천에서 솟은 절벽 위에 지어진 정자다. 절벽 위 숲에 안긴 정자 앞에서 보는 달천도, 물 건너편에서 보는 달천과 절벽, 정자가 있는 숲의 풍경도 운치 있다.
    바람에 서걱거리는 마른 풀과 물이끼 낀 냇물 바닥이 보이는 시냇물을 비호하듯 서있는 금봉의 풍경이 제5경이다. 야윈 ‘겨울강’ 옆에 뼈대 드러난 ‘겨울산’, 바람도 흉흉한 그곳이 따듯하게 느껴졌던 건 맞은편 풍경에서 걸어나오는 사람 덕이었다.
    제6경 금관숲은 금봉에서 3.46㎞ 떨어져있다는 이정표를 보았다. 금봉에서 만난 사람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2천400여 평의 숲에 겨울나무 빈가지가 촘촘하게 얽혔다. 금관숲에 이어 제7경 가마소뿔을 보았다. 혼례를 마친 신부의 가마가 절벽 아래 깊은 물에 빠지자 신랑도 뛰어들었지만 둘은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라고 한다. 제8경 신선봉이 보이는 마을, 어암2리에서 달천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80대 부부를 만났다. 마을앞 냇물의 물결 같은 주름이 얼굴에도 흘렀다. 제9경 박대소는 냇가 좁은 비포장길을 지나야 닿는 외진 곳에 있었다.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 아홉 가지 풍경들이 달천을 따라 이어진다. 휘영청 뜬 달빛이라면 그 풍경을 꾸며도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