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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신의 한 수를 보여주다

2017-10-26

라이프가이드 여행


뮌헨에서 신의 한 수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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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들렸다가 우리의 메인 미션인 세계 4대 축제 중 하나인 독일 맥주 축제 옥토버패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서둘러서 독일로 향했다. 토마토 축제의 흥분이 약간 남아 있긴 하지만 Soul-Bridge를 다시 미치게 만들어주는 축제가 독일로 향하는 내내 심장을 바운스 바운스 흔들거려 놓았다. 세계 일주 하면서 한번도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도시를 옮길 때마다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무지하게 설레었던 것 같다. 옥토버패스트처럼 큰 축제에 참가할 때는 설레임의 정도가 평소보다 200배는 더 높았던 것 같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뮌헨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속 축제이자 맥주 페스티벌이다. 옥토버페스트는 19세기 중반부터 뮌헨을 대표하는 6대 맥주회사 브로이의 후원을 받음으로써 세계 최대 맥주 페스티벌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한다.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맥주 회사들은 시중에 유통되는 맥주보다 알코올 함량을 살짝 높인 특별한 페스티벌용 맥주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대 1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천막을 세워 맥주를 판매하는데, 페스티벌 기간 동안 팔려나간 맥주는 평균적으로 약 700만 잔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축제는 화려하게 치장한 마차와 악단의 행진으로 시작되었고,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현지 시민들과 전 세계에서 방문한 여행객들로 8,000여 명이 어우러져 뮌헨 시내를 가로지르는 시가행진은 흥겨움을 더한다. 커다란 맥주잔들과 더불어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떠들썩한 맥주 천막들이 ‘웰컴 옥토버페스트 미친듯이 놀아보는 게 어때?’ 라고 손 짓을 건네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세계 일주의 시작을 유럽으로 정해서 페스티벌 일정을 모두 소화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하늘의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방문한 2010년의 옥토버페스트는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평년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페스티벌 현장에는 더욱 많은 맥주 행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우리의 드레스 코드 물론 태극기였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만의 의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태극기를 포기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태극기가 신의 한 수였다. 태극기를 보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수많은 서양인들 사이에 살짝 쭈뼛쭈뼛 하고 있었던 Soul-Bridge는 단연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200주년을 맞이하는 행사라 그런지 사실 우리는 독일 옥토버페스트 페스티벌 당시 숙소를 구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미 외국인과 현지인에 의해 한참 전에 게스트하우스는 자리가 없었고, 일부 호텔이나 민박들도 자리가 없거나, 터무니 없는 가격을 요구해서 숙박을 하기가 불가능했다. 우리는 단체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는 업체에 방문해서 오직 침대 2개만을 빌렸다. 숙소가 없어서 페스티벌을 즐기기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 장소가 더욱 축제를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큰 마당에 대형텐트, 그리고 2층 침대들, 밖에서는 캠프파이어를 즐기는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요즘 국내에서 유행하는 캠핑숙박이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안 풀리는 게 꼭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많이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계획대로 잘 안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하게 대안점을 찾아 결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는 캠핑숙박을 하면서 함께 숙박소를 이용하던 외국인들과 함께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었다. 함께해서 더욱 의미 있는 축제가 된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술은 대체로 저녁에 먹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독일 맥주 페스티벌에서는 그 공식이 성립되지 않았다. 맥주 페스티벌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이 되었고,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브로이에서 설치한 부스는 자리가 없어 앉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행히 알코올 소비량이 전세계 6위를 차지한 술을 좋아하는 민족 아니겠는가? 그 곳에서 우연히 대한민국 사람들을 만나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맥주 페스티벌은 주문 스케일부터 달랐다. 맥주 잔은 최소 1리터부터 시작이며, 그 당시 1리터에 9유로 정도 했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다. 유럽 여행 다시 아침 식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빵으로 해결했고, 점심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남은 빵을 챙겨서 해결했고, 저녁은 바게트 빵에 토마토 잼을 찍어먹던 시절이었는데 그 맥주 가격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 모토인 ‘ 여행경비는 아끼되, 즐길 수 있을 때 돈 때문에 못 즐기지는 말자’ 라는 생각을 우리가 함께 하고 있었기에 그 동안 아껴가며 썼던 돈을 맥주에 오롯이 다 투자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더군다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한 공간에서 술 마시는 것 자체가 이색적이었고, 다양한 술자리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웠다.
    맥주를 미친듯이 마시는 동안 계속해서 노래를 틀어주는데, 우리나라 대표 노래 아리랑이 갑자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선곡했는지 모르겠지만 웬지모를 뿌듯함과 가슴 찡했던 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합석한 한국인들과 함께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외쳤고, 태극기 패션을 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단언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우리가 대한민국 청춘들이라고 마음껏 소리쳤다. 아리랑 노래가 끝나고 나서 마치 정치인들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악수와 포옹을 요청했고, 그래요 나 한국사람이오 라고 마음껏 뽐내고 다녔다.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유명한 페스티벌을 정착시켜서 전 세계인들을 대한민국으로 모으고, 그 공간에서 우리가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을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보령머드축제도 이제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아가듯이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날이 머지 않은 거 같다. 세계 속의 한국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