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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이 품고 있는 세계적인 품격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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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이 품고 있는 세계적인 품격
'자동차 전문가 김필수 대림대 교수'

    ‘전통을 따르되 전진을 멈추지 말라.’ 자동차 전문가이자 클래식카 애호가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말한다. 그동안 과거보다는 미래, 전통보다는 혁신, 한국적인 것보다는 서구적인 것에 치우쳤던 사고의 무게중심을 되돌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자동차, 과거에서 온 젓가락
    김필수 교수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너무도 많다. 한국전기차협회장,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장, 한국퍼스널모빌리티협회장, 한국이륜차운전자협회장, 미래전기차기술연구조합 회장,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세계 인명사전 후즈 후 인 더 월드 (Who’s Who in the World)에는 2000~2020년까지 21년 연속 등재되기도 했다. ‘자동차’라는 키워드로 묶인 빛나는 타이틀의 행렬 속에는 다소 이질적인 ‘한국젓가락협회장’이라는 프로필도 포함되어 있다. 자동차와 젓가락은 대체 어떤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을까?
    오랜 세월 그는 자동차를 연구해왔다. 그리고 『미래를 달리는 전기차 혁명(2019)』을 비롯하여 자동차와 관련해 50권의 책을 펴냈다. 가장 다이내믹한 변화가 가장 속도감 있게 이루어지는 분야인 자동차를 연구하다 보니, 오히려 느리고 더딘 ‘전통’에 관심이 생겼다. 이면에는 과거의 상실과 전통의 부재라는 뼈아픈 깨달음이 있었다.
    “자동차 강국인 우리나라는 짧고 기술집약적인 자동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독일 같은 나라가 수십 개의 자동차박물관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는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교통박물관과 제주도와 경주에 개인이 설립한 자동차박물관 단 세 곳만이 존재합니다. 기술과 미래는 있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자동차 산업처럼 탄탄한 과거, 그에 얽힌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없는 거지요.”
    지나온 과거를 알아야 앞으로 흘러갈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전통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단순한 모양이지만 다양한 쓰임새를 지닌 ‘젓가락’을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은 젓가락 박물관을 만들고 젓가락을 통해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어요. 중국은 공자학원 등에서 젓가락질을 가르치고 있고요. 그에 반해 우리는 젓가락문화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쇠젓가락은 중국, 일본의 나무젓가락에 비해 손의 움직임을 극대화해서 뇌의 활성화를 돕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어요. 또 젓가락질을 통해 밥상 앞에서의 예의범절도 지킬수 있고요. 젓가락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관심으로 환기시킬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젓가락의 날’로 정하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올바른 젓가락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기능성 젓가락을 개발하는 등 ‘젓가락 전도사’로도 뛰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한국의 젓가락 문화와 전통을 이어 가기 위해 스스로 기꺼이 짊어지고 있는 책무라고 생각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순정황후가 타던 어차(국가등록문화재)


문화유산을 만나는 건, 과거와 조우하는 새로운 방식
    평소에도 종종 국립고궁박물관을 찾는다는 김필수 교수는 이번 인터뷰 장소로 국립고궁박물관을 택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은 그가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과거와 조우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국립고궁박물관 1층에는 레트로 마니아라면 심취할 만한 특별 전시물이 있다. 바로 1918년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순정황후가 타던 ‘어차’이다. 순종이 탔던 어차는 미국의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사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이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두 대의 어차 앞에서 ‘자동차의 미래’를 말해온 김필수 교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100년 전 차가 참 근사하지요? 이곳에 오면 걸음을 돌리기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황제의 어차에서 권위와 힘이 느껴진다면 황후의 어차에서는 우아함이 묻어납니다. 클래식이 좋은 건 그만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는 겁니다.” 차체에는 황실 문장인 황금 오얏꽃이 흐드러지고 내부는 오얏꽃이 수 놓인 황금색 비단으로 꾸며졌다. 황실 어차로서 위엄과 화려함을 갖추었으며, 운전석 뒤편의 의자를 접거나 펼칠 수 있도록 해서 실용성도 겸비했다. 1992년 문화재관리국과 현대자동차가 복원 작업에 뜻을 모아 1997년 순정황후어차와 함께 5년에 걸쳐 수리·복원했다. 그도 순종황제 부부 어차의 문화재등록 작업에 참여했다.
    “제가 최종적으로 문화재청 자문회의에 들어가서 선정에 참여했는데, 그때 문화재 후보가 100개쯤 됐습니다. 지정을 하는 데도 순위가 있어서 그중 12점이 문화재로 등록되었죠.” 김 교수는 오래된 것들이 세상의 빛을 만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잊혔던 기억의 편린과 마주했다. 역사의 증거로 채택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그는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 

 
김필수 교수는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지혜와 삶의 방식이 쌓아올린 결실이라고 강조한다.


지혜의 응집,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이유
    그가 정의하는 클래식카는 단순히 오래된 자동차가 아니다. 모든 클래식카는 오래된 자동차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오래된 차가 클래식카는 아닌 것이다. 제작 연도 같은 단순한 기준을 넘어, 옛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부품 등 속살을 바꾸는 행위와 이를 수집하고 거래하는 문화까지 아우른다. 역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도 낡은 차와 구분된다.
    “클래식카는 당시 상류층의 문화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흉내 낼 수 없는 품격과 고귀한 가치를 지녔을 뿐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매개가 되기도 하지요. 지금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차도 발굴하여 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소중한 것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역사를 알고 전통을 이해해야 미래의 길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김 교수는 전통의 가치를 되새기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자동차를 비롯해, K-컬처 등 ‘메이드 인 코리아’가 자랑스러운 수식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는 최근에 우수해진 게 아니라 수천 년간 지혜와 삶의 방식을 슬기롭게 절차탁마해 온, 이미 오래전부터 우수한 민족이었다는 것을요. 한국적인 것은 지금, 그래서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은 그가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는 것은 과거와 조우하는 새로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