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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 보통인들의 기록

2022-07-22

문화 문화놀이터


그 사람이 추천하다 - 곽재식 소설가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 보통인들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속 「세종실록」'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16년간 책을 써 온 곽재식 소설가. 공학박사인 본업 탓에 SF 소설가로 익숙하지만 사실 그는 SF뿐 아니라 역사, 추리소설을 비롯해 인공지능, 기후위기를 다룬 과학 에세이 등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3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글쓰기가 일상이 된 그가 작품의 소재를 얻는 것 중에는 우리 문화재 속에 남은 역사 기록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경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곽재식 작가의 추천 문화재 「세종실록」에 관해 들어봤다. 



 
역사 기록과 만난 상상력
    “흔히 조선을 ‘기록의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방대한 기록을 담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도 많죠. 하지만 왕실의 모습을 담은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 외에 민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기록물이 적다는게 아쉬워요.”
    화학 분야 공학박사인 곽재식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글을 써 왔다.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드라마로 영상화되면서 글쓰기는 취미를 넘어 부업이 되었다. 일상 속 모든 것에서 소재를 얻는 곽재식 작가에게 기록 문화재 역시 영감의 원천이다. 그는 2013년 고대 문헌 속 짧은 기록들을 소재로 소설집 『모살기』를 발간했고 2014년 『역적전』에서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을 배경으로 고구려에 침략당한 남부 3국 사람들의 군상을 다뤘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이 있어요. 그 당시 지식으로 여겨진 것을 모두 써놓은 책인데 현재는 원본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황당한 일화가 전해지는데 1920년대 중반 즈음 국문연구 소에서 근무했던 권보상 서기관이 겨울에 군밤을 사 먹었다고 해요. 밤장수가 싸 주는 종이가 이상해 자세히 살펴 봤더니 고서였고, 이를 검토한 결과 『오주연문장전산고』로 판명 났죠.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이 중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지식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했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인데 원본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워요.”
    『조선왕조실록』은 당대의 현실이 기록 양상에 반영돼 있어요. 대부분 왕실 이야기이죠. 하지만 성군이 통치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세종실록」에는 일반 백성의 이야기를 다른 시기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左)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 또는 『세종실록』은 세종의 즉위년(1418) 8월부터 세종 32년(1450) 2월 승하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모두 163권 154책으로 구성되어 조선왕조실록의 한 부분을 이룬다.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右) 『세종실록지리지』 에 나타난 울릉도와 독도의 관리 내용. 조선왕조가 15세기 초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관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사진. 국가기록원)


백성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세종실록」
    역사의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곽재식 작가가 추천한 문화재는 태조(1392)부터 철종(1863)까지 25대에 걸친 472년간 조선 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그중에서도 「세종실록」이다. 건국 초기 조선의 각 고을 정보와 지리를 담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실린 점도 의미가 있지만 그는 “백성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기록돼 있는 점이 흥미롭다”라며 추천 이유를 전했다.
    “『조선왕조실록』은 당대의 현실이 기록 양상에 반영돼 있어요. 전쟁이 많았던 선조 때나 조정이 혼란스러웠던 광해군 때는 왕실 이야기 위주로 단조롭게 작성돼 있지만 성군이 통치했던 시기인 「세종실록」에는 일반 백성의 이야기나 민간에서 내려오는 전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어요.” 

 
左) 오례(五禮) 의식과 진행 절차를 담은 『세종실록오례의(世宗實錄五禮儀)』는 그 내용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소개한다. 
해당 그림은 궁중 행사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되는 북인 건고(建鼓)를 그린 그림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右) 조선시대 각종 사료에서 발굴한 괴물 기록을 담은 곽재식 작가의 저서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사진. 알라딘)


    「세종실록오례의(世宗實錄五禮儀)」가 포함된 것도 그가「세종실록」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조선시대 국가 운영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오례(五禮) 의식과 그 진행 절차를 담은 「세종실록오례의」는 14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예례 의식과 의식기구를 그림과 함께 상세히 설명했다. 그 밖에도 「세종실록」에는 그가 11년 동안 사료를 모아 책을 발간했을 만큼 흥미를 끈 괴물에 관한 기록도 상세히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만인사(萬人蛇)’라는 괴물 뱀 이야기를 꼽을 수 있어요. 만인사는 함경도 북방에 살면서 사람을 수없이 잡아먹었는데 이름처럼 사람 만 명을 잡아먹으면 몸속에 사람의 피가 응축된 검푸른 돌, 만인혈석(萬人血石)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 만인사의 천적인 거대한 새 ‘여이조 (汝而鳥)’가 뱀을 뜯어먹고 나면 그 자리에 돌만 남는 것이죠. 「세종실록」에 어떤 여진족 한 사람이 이 돌을 만병통 치약이라면서 세종에게 바친 일화가 나와요. 말도안 되는 주장을 들은 세종이 어이가 없어 김종서를 시켜 그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후일담도 기록돼 있죠. 역사 기록 일부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제게 「세종실록」 은 그야말로 ‘이야기보따리’예요.” 

 
곽재식 작가는 “역사 기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내게 「세종실록」은 ‘이야기보따리’이다”라고 전했다.


    “최근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곽재식 작가는 직장을 그만둔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은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올 하반기 과학교양서와 에세이 두 권의 책이 출간될 예정인 그에게 다작의 비결을 묻자, “크게 흥한 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좇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곽재식 작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라나게 할 그의 다음 이야기를 손꼽아 기대해 본다. “좋아하는 일이라 계속 해 왔지만, 독자 분들이있기에 지금까지 책을 써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이야기, 흥미로운 책으로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