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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새해 아침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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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새해 아침
'글. 박순철'

    “아버지! 어머니! 앉으세요. 새해 인사 올리겠습니다.”
    “잠깐, 너희들 봉투 내놓고 절해라 그러기 전에는 절 안 받을란다.이 녀석들아 나도 정초부터 밑지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냐. 너희 새끼들 세뱃돈은 하늘에서 떨어진다더냐?”
    어째 계묘년 새해 아침부터 뭔가 꼬여 돌아가는 성싶다. 조상님 차례를 지내고 부모님께 세배하려고 모여 섰던 3형제 부부와 그 식솔 여섯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얼굴 쳐다보기에 급급하다. 아들 3형제 밑으로 약속이나 한 듯 각 가정에 둘씩 낳아 손자가 넷, 손녀가 둘, 모두 여섯 명이다. 이 다복한 가정에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흐른다. 
    엉거주춤 서 있는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이 얼굴 저 얼굴 쳐다보기에 바쁘다. 둘째 아들이 첫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묻는다. 
    “형! 아버지가 무슨 말씀 하시는 거야?”
    “이제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나 보다. 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말씀 안 하시더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 되겠다. 우리 각자 봉투 준비하자.”
    “그럼 얼마씩 넣어야 해?”
    “알아서 넣어. 아버지가 돈을 받기 위해 하시는 말씀은 아닌 것 같아”





    삼 형제는 방으로 들어가 아내와 상의한 후 봉투를 들고나와서 다시 부모님께 세배할 준비를 한다. 첫째가 부모님 앞에 봉투를 놓는다. 그러자 둘째와 셋째도 똑같이 봉투를 꺼내 놓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도 건강하세요.”
    “그래. 고맙구나. 너희들도 건강하고 사업 잘되기를 빈다.”
    이번에는 며느리 셋이 나비같이 사뿐하게 절을 하고 그 고운 자태로 꿇어앉는다. 그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 같다. 언제 준비했는지 시어머니 앞에만 봉투를 놓는다.
    “아버님! 어머님! 만수무강하세요.”
    “그래 우리 며느리들 고생 많았다. 올해는 너희들 가정 모두 무탈하고 우리 손주들 마음껏 뛰노는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덕담한다.
    “자, 이것은 내가 며느리들에게 주는 용돈이다.”
    소갈 씨 아내가 농협 마크가 예쁘게 그려진 봉투 한 장씩을 나눠준다. 얼마씩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훈훈해 보인다.
    “이제 너희들 차례다.”
    며느리들이 일어서고 나자 마지막으로 손주들이 늘어섰다. 순서대로 쭉 나열한 모습이 아이돌 같다. 어쩜 저리도 잘 생겼는지. 거리 한복판에 나서면 서로 우리 손주 하자며 끌어당길 것만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집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합창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래! 우리 복덩어리들, 큰 손자는 올해 고등학교 입학하지, 모두 공부 열심히 하고 노는 것도 열심히 해라. 하지만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네.”
    녀석들의 대답이 준비라도 한 듯 합창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세뱃돈이다. 세뱃돈은 마음대로 써도 좋지만 요긴하게 쓰기 바란다.”





    소갈 씨는 다른 친구들 보다 다소 늦게 결혼했으나 첫아들을 낳았다. 아내가 두 번째 임신했을 때는 딸을 얻고 싶어 했다. 딸 많은 집은 모든 게 부드러운 듯 보였다. 그리고 명절이나 큰일 때 집안 일하기가 쉬운 듯했다. 그래서 소갈 씨 부부도 딸을 원했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디 그리 흔하던가, 쌍둥이 아들을 낳고 말았다.
    아들 셋을 얻은 보람도 잠시 3형제 뒷바라지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전에는 둘이 손발이 척척 맞아서 일이 쉬웠는데 이제 소갈 씨 혼자 하려니 힘만 들고 일은 더디기만 했다. 아내가 보행기 두 대를 빌려다 각각 태워놓고 한 녀석은 농짝 고리에 묶고, 다른 녀석은 안방 문고리에 묶어놓고 들일을 다녀와 보면 두 녀석 얼굴이 말이 아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고 얼마나 둘이 서로 다가가려 했는지 겨드랑이가 벌겋게 달아 있었다. 서로 닿지 않게 끈으로 묶어두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보행기가 충돌하는 과정에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둘이 고개를 외로 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부의 심정은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 그 이상이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첫째에게 쌍둥이 동생 둘을 맡겨놓고 들에 나가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셋이 뒤엉켜 있다가 흙투성이 부모에게 와락 달려들어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진동한동 저녁밥을 짓곤 하던 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맏이에게 많이 미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든 풀 한 포기라도 더 뽑으려고 애쓰던 시기였으니 자식새끼 고생하는 것쯤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큰 애와는 달리 쌍둥이는 늘 또래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조금 덩치가 큰아이도 두 형제의 협공을 당해내지 못하고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그러면 이튿날 소갈 씨는 학교에 불려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또 상대방 학부모에게는 자식 교육 잘못시켰다고 얼마나 면박을 받았던가. 그래도 학교 다닐 때가 양반이었다. 두 놈이 해병대에 같이 입대하면서는 동부레기 나대듯 하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놈들이 휴가를 나오면 읍내 장바닥을 쓸고 다녔다. 각이 진 해병대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두 놈이 거리를 활보하면 건들거리던 사내들은 번개같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어쩌다 싸움이 벌어지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찰떡 호흡을 자랑하던 녀석들을 당해낼 사람은 읍내에선 없었다. 한번은 읍내에서 친구들과 술 먹다가 술집을 홀랑 뒤집어엎은 일이 있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소갈 씨 몫이었고, 배불뚝이 암소 한 마리가 날아가고도 간 쓸개 다 빼놓고 빌고 또 빌고 나서야 간신히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며 망나니짓을 하던 녀석들이 이제 짝을 이루고 제 앞가림을 하니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아닌 말로 업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맨날 청춘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소갈 씨 머리에도 서리꽃이 피었다. 이제 그 억척스레 하던 농사일도 절반으로 줄였다. 녀석들 집 사주고 전세 얻어주느라 문전옥답은 사라졌고 강 건너 모래밭 한 뙈기만 남았다. 
    큰 며느리가 커피를 소갈 씨 부부앞에 대령했다. 모처럼 극진한 대우를 받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 소갈 씨! 아들네도 자연스레 부모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앉는다. 큰아들이 무겁게 입을 연다.
    “아버지! 어머니! 저희가 조그마한 선물하나 준비했습니다. 이 선물은 나중에 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 마음이 조금 허전해하시는 것 같아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3형제가 보험을 하나 들었습니다. 그 보험은 이번 달부터 매월 50만 원씩 아버지 계좌로 이체될 것입니다.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돈하고 보태면 힘들게 농사일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힘내시기 바랍니다.”
    “뭐야? 이 녀석들! 나 돈 안 줘도 괜찮다. 너희들만 건강하면 된다.”
    “넵! 아버지. 충성.”
    이번에는 해병대 출신 쌍둥이 형제가 장난스레 부동자세로 경례를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입에서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