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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낭성면 산정말 샘에서 시작되는 무심천 이야기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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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낭성면 산정말 샘에서 시작되는 무심천 이야기
'물의 나라 충북 - 청주 Ⅰ'

    새해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됐다. 처음처럼 신선한 마음으로 한해를 연다. 무심천 발원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낭성면 추정2리 산정말을 찾은 이유다. 산정말 윗샘에서 솟은 물이 흘러넘쳐 마을 동쪽 드르미 계곡을 지나 무심천이 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높은 경지의 도덕은 물과 같다는 말을 대지 않더라도 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투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 새봄에는 남일면 효촌리 효자마을 이야기를 전해주는 비석을 보고 무심천가 이팝나무꽃길을 걸어봐야겠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산정말 아래샘


두 개의 샘이 있는 산정말을 찾아가다
    복눈이 내렸다. 낮 기온도 영하에 머무른 날씨에 눈은 내린 모양 그대로 세상을 덮었다. 산정말로 올라가는 길이 미끄러워 비탈길이 시작되는 곳에 차를 두고 걸었다. 1㎞ 정도 되는 산비탈 찻길이었다. 그 길에서 본 풍경이 복눈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가지를 넓게 퍼뜨린 침엽수와 활엽수의 빈 가지와 하얀 눈이 어울린 숲이 계곡에서 산비탈을 타고 오른다. 산비탈에도 산등성이에도 빗살처럼 나무가 박혔다. 뜨겁게 살아냈던 푸르른 여름 흙을 움켜쥔 뿌리의 기억으로 겨울을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저 구석기. 또렷하게 박힌 빗살무늬에 새겨진 여름 숲의 아우성. 농아학교 하교시간 교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손말’ 그 ‘꽃사태’처럼 낱낱이 박힌 극사실주의.
    그 어떤 것의 처음으로 가는 풍경은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 처음의 무엇이 전설처럼 기억될 것 같았다. 
    무심천이 시작되는 그 처음이 산정말에 있다.(가덕면 내암리와 한계리에도 무심천이 시작되는 물줄기가 있다. 청주시에 따르면 하천기본계획상 무심천 수계의 시작지점은 낭성면 추정리19다.) 
산정말은 충북 청주시 낭성면 추정2리의 옛 이름이다. 옛날에 스님이 산을 넘다 목이 말라 물을 찾다 못 찾아서 산 정상에 올라 기도를 드렸더니 그곳에서 샘물이 솟았다는 전설이 산정(山井)말 이름의 유래다. 산정말은 산꼭대기에 있으니, 산정(山頂)말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아니면 두 이름의 뜻을 새겨 ‘샘이 있는 산꼭대기 마을’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산정말에는 샘이 세 개였다. 그중 한 개는 없어지고 두 개만 남았다. 그중 윗샘이 무심천이 시작되는 물줄기의 처음이다. 

 
左)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산정말 윗샘에 남아 있는 작은 홈. 마을 사람들이 고추도 이기고 익모초도 빻던 흔적이다.
右)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산정말 윗샘. 샘에서 물이 샘솟는다. 고였다 흐르는 물이 계곡이 되고 무심천이 된다.


산정말 사람들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   
    샘에서 물이 샘솟는다. 엄동에도 얼지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샘솟는 물은 마을의 공동우물이기도 했다. 집집마다 물동이를 이고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다 항아리에 채웠다. 그 물을 마시고 생활용수로도 썼다. 
    마을 언덕 꼭대기 차진 흙을 소달구지에 실어 날랐다. 그 찰흙을 이겨 샘가를 둘러쌓아 턱을 만들었다. 물은 더 많이 고이고 흘렀다. 70년대 중반에는 시멘트와 철근으로 턱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지금의 모양으로 꾸몄다. 
    샘가에 옴폭 파인 돌 두 개가 박혀있다. 식구들 밥상에 오를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추를 이기던 흔적이다. 폭염에 땡볕 아래에서 일하다 더위 먹지 말라고 익모초 약즙을 갈던 흔적이다. 그렇게 샘가에서 봄이면 나물을 씻고 여름이면 열무를 다듬었다. 한겨울 빨래에 손이 벌겋게 얼던 날도 숱했다. 고단했지만 고단한 줄 몰랐던 세월이었다. 젊어서 버틸 수 있었고, 식구들 생각에 견딜 수 있었다. 
    마을 더 위에 있는 불당골 샘에서 물을 끌어다가 마을 위 언덕에 정수시설을 설치하고 각 집마다 간이상수도를 만들어 사용하면서부터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마을 공동우물의 추억은 그 제1막을 내린다.          
    이제 다시 떠오르는 산정말 샘의 이야기는 무심천을 이루는 물줄기의 시원 중 한 곳이라는 것. 어디에서 흘러와 고였다 흐르는 물이 아니다. 샘솟아 흐르는 물이다. 그래서 처음이다. 그 샘물은 산정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흘러 마을 동쪽에 작은 계곡을 만들었다. 발원지를 떠난 샘물이 처음 만든 계곡, 드르미. 드르미를 따라 차를 세워둔 곳으로 내려간다. 설원이 처음처럼 더 새롭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를 흐르는 효촌천이 무심천으로 흘러드는 지점. 오른쪽 물길이 무심천이다.


옛 겨울 냇가의 아이들과 효자마을, 그리고 청남대 
     한계천과 무심천의 합수지점, 드러난 바닥에서 마른풀이 서걱거렸다. 웅덩이 한쪽이 얼어붙었다. 무심천 겨울은 그랬다. 옛날은 지금보다 더 추웠다. 꽝꽝 언 시냇물로 아이들은 매일 같이 모였다. 팽이도 치고 썰매도 지쳤다. 굵은 철사로 날을 만든 썰매가 흔했지만, 스케이트 날로 만든 썰매를 타는 아이들도 있었다. ‘스케이트날’ 썰매는 직진은 빨랐지만 곡선으로 달릴 때는 젬병이었다.  ‘굵은철사’ 썰매는 곡선으로 달릴 때도 제자리에서 회전할 때도 만능이었다. 썰매를 지치는 송곳 하나로 축을 만들어 속도를 제어하고 다른 송곳으로 방향을 트는 기술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척척해냈다. 겨울 냇가의 아이들은 해가 지는 줄 몰랐다. 동상걸린 손가락 발가락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를 흐르는 효촌천이 무심천으로 흘러들어 하나되어 흐른다.


    가덕면 상대리 앞에서 크게 굽이친 물길은 북으로 흘러 남일면 효촌리 앞을 지난다. 조선시대 성종 임금 때인 1478년 눈 덮인 산에 시루를 엎어놓고 제를 올려 고사리를 돋게 하고, 한겨울에 마을 앞 연못에서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병석의 아버지를 보살폈다는 효자 경연의 이야기가 효촌리에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대를 이어 전해졌고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숙종 임금은 경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고자 효자비를 세우게 했다. 그 효자비가 남일면 효촌리 단재로 길가에 남아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효자비 남쪽에서 동서로 흐르는 효촌천은 경연의 이야기를 품고 무심천과 하나 된다. 무심천과 효촌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2.4㎞ 정도 이어지는 둑은 이팝나무길이다. 해마다 5월이면 풍년을 기원하는 이팝나무꽃이 고봉밥처럼 소복하게 피어난다.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며 청남대에 들렀다. 숲길을 지나 전망대에 올랐다. 대전시 대덕구와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일대, 그리고 더 먼 풍경까지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다. 그 풍경에 대청호 물길과 물길을 품은 산줄기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