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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사지와 보물 동종

2024-05-09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 여행]
구양사지와 보물 동종
'숨겨진 운천동 이야기- 구루물 산책'

    ‘구루물 산책’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행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천동의 숨겨진 다채로운 발굴 이야기를 흥덕사지를 발굴한 지역 전문가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엮은 책입니다. 
Cheapter5. 구양사지와 보물 동종
    운천동 무심서로 옆에 소재한 ‘절터공원 놀이터’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동종이 출토된 옛 절터이다. 절은 고려 말에 없어지고 6백 년 세월을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70년 4월 10일에 우연히 동종이 발견되면서 절터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지번으로 운천동 376-1번지에 살던 최용문 씨 집에 조립식 담장을 설치하기 위해 기둥을 묻을 구덩이를 파던 중에 작업 도구에 쇠붙이 닿는 소리가 나서 조심스레 파보니 동종이 나왔다. 동종은 약 70㎝ 깊이에서 눕혀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동종 안에는 금동보살입상 1점, 청동금구 1점, 향로 2점, 놋그릇 2점이 들어 있었다. 향로와 놋그릇은 부식이 심하여 원형을 알기 어려웠으나 동종과 불상과 금구는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다. 그 일대에서 많은 기와 조각과 고려청자 조각들이 발견되어 옛 절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종 안에서 발견된 청동금구에 새겨진 ‘기사6월 일 구양사(己巳六月 日 句陽寺)’라는 글씨를 통해 절 이름이 ‘구양사’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들은 매장유물로 신고하여 국가귀속 처리되었다.  

 
운천동사지 발굴전 전경



    동종이 발견된 곳은 청주 시내에서 그리 멀지는 않으나 당시에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는데 1984년에 청주에서 최초로 택지개발사업을 시작하였으므로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사찰의 구조는 남북 일직선 위에 금당과 탑, 중문이 자리하고 주위에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일반적인 가람 형태로 확인되었다. 중문은 남쪽 회랑과 동일 건물의 중심부에 출입문을 낸 형태로 기단 축대와 초석들이 잘 남아 있었다. 사역의 외곽에는 석축 담장지가 확인되어 절터의 범위는 대략 2천여㎡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유구가 심하게 교란되고 중복되어 2~3회 정도의 중수 내지는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전란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발굴조사에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가장 많은 것은 기와 종류이다. 연화무늬·연화당초무늬·보상화무늬·귀목(鬼目)무늬·불(佛)자 새긴 수막새기와 등이 다수 출토되었고, 암막새기와로는 연화무늬·당초무늬·귀목무늬 등의 문양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거나 복합되어 새겨진 것들이 있다. 이밖에 도깨비 얼굴을 새긴 곱새기와[望瓦]와 당초무늬 박공막새, 그리고 치미(?尾) 조각과 전돌 등이 있으며, 초상(草上), 성(城), 대관(大觀), 불법○세(佛法○世) 등 여러 가지 글씨가 새겨진 기와들이 발견되어 절터의 역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쇳물을 녹여 여러 가지 물건을 제작할 때 사용되었던 도가니가 발견되어 주목되는데 이것은 이곳 절터와 흥덕사지 등 주변의 사찰 터에서 발견된 청동유물을 제작할 때 사용되었던 것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화강석으로 제작한 높이 14.5㎝의 불두(佛頭)도 출토되었는데 머리를 삭발한 것으로 보아 승려상이거나 지장보살상으로 추정된다. 이 유물들은 대개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거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1970년에 발견되어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의 금속공예실의 중심에 별도의 진열장을 설치하여 전시하고 있는 운천동 동종은 전체 높이는 78㎝이고, 하단 종구의 지름은 47.4㎝이다. 신라 동종의 일반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아름다운 동종이다. 부분적인 손상이 있으나 전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종의 몸통 양편에는 서로 대칭되는 2곳에 원형 당좌(撞座)를 표현하였다. 당좌에는 중심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주위에 당초무늬를 돌렸다. 이 당좌 위에는 1조의 융기선이 지나는데, 주조할 때의 흔적이다. 이 융기선 위쪽의 양편에 2구의 비천상이 조각되었다. 비천상 1구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고, 1구는 두 손을 합장한 모습으로 모두 무릎을 꿇고 있다. 

 
운천동 동종(보물 1167호)



    운천동사지 출토 동종은 국내에 3점밖에 없는 신라 종으로서 양식적으로는 우리나라 특유의 용뉴와 용통이 있고 9개의 유두가 있는 4개의 유곽, 마주한 당좌와 비천의 배치, 몸체 중간부에서 배가 불렀다가 종의 아가리 부분에서 약간 좁아지는 전체 형태의 비례, 그리고 각부의 조각 수법 등 균형이 잡히고 안정감이 있는 조형을 보여준다. 9세기경 우수한 신라 범종의 하나로서 운천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1993년에 보물 제1167호로 지정되었다. 
    동종은 사찰의 종루에 걸어놓고 당목으로 쳐서 때를 알리거나 대중을 모을 때 사용하는 큰 종으로서 경종·조종·당종·범종이라고도 한다. 불교의식에서 소리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법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동종인데 법고·운판·목어와 함께 불전사물 또는 사중사물이라 한다. 법고는 땅을, 목어는 물을, 범종은 불을, 그리고 운판은 바람을 각각 상징하고, 또 법고는 육지 중생, 목어는 어류 중생, 범종은 지옥 중생, 운판은 허공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가 있다. 
    동종 안에서 함께 발견된 청동금구 역시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깨지거나 일그러진 부분 하나 없는 완전한 형태이다. 이 금구에서 주목되는 것은 측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명문이다. 명문의 내용은 ‘기사년 6월에 구양사 절에서 반자를 하나를 만들었는데 무게는 13근 8량이며 시주한 사람은 동량도인 덕장이고 장인은 급급삼이다(己巳六月 日 句陽寺□子一重十三斤八兩 棟梁道人悳長改造大匠伋伋三)’라는 것이다. 제작 연대는 기사년이라는 간지만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앞면에 조각된 문양으로 보아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앞면에는 굵은 융기선으로 동심원을 그려 3구역으로 나누었으며 중심부의 동심원 안에는 12개의 연자(蓮子)를 배치하였고 가운데와 외곽의 둥근 선 안에는 연꽃무늬와 당초무늬를 양각으로 표현하였다. 측면에는 2개의 고리가 부착되어 있다. 크기는 직경 41㎝, 두께 10㎝이다. 
    금동보살입상 역시 동종 안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형의 대좌 위에 직립한 보살상으로 보관을 쓴 머리의 정수리에는 육계(肉?)가 높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살이 약간 찐 도톰한 모습으로 눈은 감았고 귀는 길어서 어깨에 거의 닿고 있다. 가사는 양 어깨에 걸친 통견으로 옷주름이 발목까지 흘러내렸는데 무릎부터는 V자형을 이루었다. 조성연대는 함께 출토된 동종과 비슷한 시기로 보여 통일신라로 추정된다. 크기는 높이 1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