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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사지 발굴 이야기-2부

2024-04-18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 여행]
흥덕사지 발굴 이야기-2부
'숨겨진 운천동 이야기- 구루물 산책'

    ‘구루물 산책’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행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천동의 숨겨진 다채로운 발굴 이야기를 흥덕사지를 발굴한 지역 전문가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엮은 책입니다. 
Cheapter3. 흥덕사지 발굴 이야기
    흥덕사지가 사적지로 지정되는 동안 일부에서는 ‘흥덕사’라는 명문이 있는 금구편 하나로 흥덕사지로 단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한편에서는 주자소의 유구나 금속활자의 실물이 발견되기를 기대하였다. 이러한 여론에 따라 충청북도는 흥덕사지의 주변지역에 대한 정밀조사를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1986년 5월 2일부터 18일간 사지에서 반출해간 흙으로 조성한 택지지역을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여 정밀조사를 하였다.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정밀조사를 통하여 주자소나 금속활자를 찾는 데는 실패하였으나 몇 가지 성과를 얻었는데, 그것은 청동소종과 ‘흥덕사’라는 명문이 있는 금구편 등 청동유물이 다량 수습되었던 부근에서 청동보당용두(寶幢龍頭) 2점을 비롯한 청동불발(佛鉢) 등 여러 점의 청동유물을 발굴해낸 것이었다.

 
흥덕사지 보당용두


 
    특히 그 가운데 청동불발의 구연부(口緣部) 외측 면에는 ‘황통 10년 경오년 4월 일에 흥덕사 의지중대사 영인이 왕생정토를 발원하면서 불발 1합을 갖추어 운구에 새기니 무게가 2근 2량이다(皇統十年庚午四月 日 興德寺依止重大師領仁 往生淨土之愿 佛鉢一盒具鈒雲口 入重二斤二兩印)’라는 40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서 흥덕사지를 재확인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황통 10년 경오(皇統十年庚午)’는 1150년(고려 의종 4)에 해당되어 이 일대에서 함께 출토된 유물들의 연대추정은 물론 흥덕사의 연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발굴조사 다음해인 1986년에는 흥덕사지를 처음 확인시켜 주었던 ‘흥덕사’라는 명문이 있는 금구편의 나머지 몸통부분이 민간인에 의해 발견되어 대학박물관에 매각되었는데, 후에 충청북도에서 이를 회수하여 국고에 귀속됨으로써 8개월 만에 제 짝을 찾게 되었다. 그 몸통부분의 측면에 연속된 명문의 전문은 ‘갑인오월 일 서원부흥덕사금구일좌개조 입중삼십이근인(甲寅五月 日 西原府興德寺禁口臺坐改造 入重三拾貳斤印)’이었다. 
    발굴을 통해 확인된 흥덕사의 배치는 남향의 단탑(單塔) 가람으로서 중심축 선상에 중문·탑·금당·강당이 있고, 이들 좌우로 동·서 회랑이 돌려진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양식을 따랐으며, 각 건물들은 후대에 중수를 거듭하면서 약간씩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따라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금당과 3층 석탑을 복원하고 회랑지와 강당지는 주춧돌이 노출되도록 잔디를 심어 정비를 하였다. 현재 흥덕사지의 남쪽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하여 우리나라 고인쇄출판문화의 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의 장과 21C정보문화산업의 중심메카로 활용하고 있다.  
출토유물
    흥덕사지의 출토유물은 크게 와전류와 금속류로 구분할 수 있다. 와전류는 수막새·암막새·치미와 함께 글씨가 새겨진 명문기와 등이 있고, 금속류는 모두 청동으로 제작된 불교용품들이다. 
    수막새는 연꽃무늬 또는 연꽃무늬와 당초무늬가 복합 시문된 것이 가장 많으며 문양의 형태가 다양하여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음을 나타내준다. 또한 일부의 수막새는 통일신라 말기의 양식이 나타나고 있어 흥덕사의 상한 연대를 추정하게 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인 해무리무늬와 도깨비무늬가 새겨진 수막새도 출토되었다. 
    암막새는 가장자리에 구슬무늬가 돌려진 당초무늬암막새가 주류를 이루고,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해 있는 연꽃무늬암막새가 출토되었다.

 
左)흥덕사지 ‘계향지사’ 명 기와 右) 흥덕사지 ‘대중3년명’ 기와



    명문 와편으로는 ‘계향지사(桂香之寺)’와 ‘대중삼년(大中三年)’명 기와편이 주목된다. ‘계향지사’라 새겨진 기와를 통해 이곳 사찰의 이름이 한때 ‘계향사(桂香寺)’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무심천 건너편 우암산에 자리한 관음사에서도 똑 같은 기와가 출토되어 단정하기 어렵다. ‘대중삼년’명 기와는 849년(신라 문성왕 11)에 절을 처음 지었거나 중수한 사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로서 흥덕사의 초창시기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자료이다. 
    치미는 주로 금당지 북쪽 처마 밑에서 발견되었는데 파편을 모아 복원한 결과 전체적인 모양은 경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치미와 같은 기본형으로 고려시대의 치미로서는 유일한 완형이고, 규모에 있어서도 전체높이가 1.5m에 이르러 황룡사지 치미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이 치미의 실물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전시되어 있고, 복원된 흥덕사 금당의 지붕에도 이것을 본떠 만들어 올렸다. 그리고 청주고인쇄박물관 입구에는 이것을 크게 확대한 석상으로 제작하여 장식하였다. 
    금속류는 ‘흥덕사’ 글씨가 새겨진 것을 포함하여 3개의 금구가 발견되었는데, 파손이 심한 1점을 제외하고 2점은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청동제 소종·금강저·보당용두와 청동불발·청동향로, 그리고 여러 가지 청동그릇들이 있는데, 불발에는 ‘흥덕사’라 새겨진 글씨가 있어서 주목을 받는다. 
    이외에도 금당지에서 무쇠로 만든 불상의 나발 파편이 다수 출토되어 비록 불상은 소실되어 없어졌지만 이 법당에 모셔진 불상이 철조불상[鐵佛]이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현재 복원된 흥덕사 금당 안에 봉안된 철불은 충주에 있는 국보 불상을 재현한 것이다. 
    토기와 도자기 파편들도 다수 발견되었는데 해무리 굽이 달린 고려 초기의 청자대접과 물고기를 백상감으로 표현한 분청사기 조각들이 출토되어 흥덕사의 역사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