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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가 예술이 못 될 이유 있나? 30년 전 질문이 거장을 만들다
2024-01-29
비즈니스 피플조명
정책주간지 K-공감
가구가 예술이 못 될 이유 있나? 30년 전 질문이 거장을 만들다
'‘아트 퍼니처’ 작가 최병훈'
최병훈 작가는 국내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 1세대 작가다. 아트 퍼니처란 말 그대로 ‘예술적인 가구’라는 뜻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가구는 대량생산한 공산품이거나 호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작가는 ‘가구가 예술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에 아트 퍼니처라는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명명하고 ‘가구는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수많은 예술 가구를 빚어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나 한국산 아트 퍼니처는 전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파리장식미술박물관, 독일 비트라디자인뮤지엄 등이 그 무대였다.
최 작가는 ‘돌과 나무의 작가’로 불린다. 오직 자연의 재료로 가구를 만들기 때문이다. 스타일 또한 간결하다. 거대한 바둑돌을 연상케 하는 벤치, 네모반듯한 나무 상자들을 어슷하게 쌓아 올린 장식장, 등과 엉덩이만 겨우 기댈 수 있는 ㄴ자 구조물 끝에 큰 돌 하나만 툭 놔둔 의자…. 요란한 시대에 그의 작품은 절제와 사색을 이야기한다.
아트 퍼니처의 진수를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청와대 소정원에서 첫 야외 전시가 꾸려진 것. 국내 유수 공예작가의 작품 10여 점이 공개된 가운데 최 작가의 작품 두 점이 함께한다. 물빛으로 반짝이는 매끈한 검은 돌, 먹을 갈아 일필휘지한 듯 유려한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3미터 길이의 벤치가 조용히 방문객을 기다린다. ‘태초의 잔상’ 시리즈 중 2014년 제작한 409번째, 410번째 작품이다. 불뚝 솟은 백악산을 병풍 삼아 청기와가 반짝이는 팔작지붕 아래 돌과 나무의 작가를 만났다.
‘태초의 잔상’이라는 작품명이 다소 어렵다.
내 작품의 기초는 나무인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돌은 억겁의 세월을 거쳐 다듬어진 소재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뒤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돌 안에 담긴 세월을 인간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작품을 만드는 데 대개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 ‘억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대답하는 이유다(웃음). 자연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위대함이 있다. 태초의 잔상이라는 말에는 그러한 경이로운 자연이 내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났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까지 만든 이 시리즈 작품만 600개 가까이 된다.
청와대 전시작에 쓰인 돌을 발견했을 때 2년간 멍하니 바라만 봤다고.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현무암이다. 돌을 수입하는 이가 깎을수록 검은 속살이 드러나는 돌이라며 보여주는데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마그마가 분출한 것이 굳어지면서 속은 검고 겉은 회백색인 돌이 된 거다. 게다가 철분이 많아 마찰을 할수록 빛이 났다. 참 재미난 돌이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작업실로 가져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아득했다. 구상만 하다 2년이 흘렀다. 그러다 슥 일필휘지로 그은 듯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전체적으로 돌의 검은 속살이 드러나면서 광택이 나도록 가공하고 중심부는 돌의 겉살이 그대로 표현되도록 거친 느낌을 살렸다. 자연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지도록 한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당도한 게 결국 ‘일필휘지’라니.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뭐가 안 나오니 모든 걸 내려놓는 마음으로 다 생략하고 한 획을 그린 게 그렇게 표현됐다. 때마침 미국 뉴욕 갤러리 관계자와 미팅이 있었는데 당시 먹으로 작품을 구상한 그림을 보여주니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서양엔 일필휘지라는 개념이 없으니 신선했던 거다. 작품을 완성하고 이듬해에는 미국에서도 전시를 했다.
아트 퍼니처는 아트인가? 퍼니처인가?
인간이 스스로 정한 것에 절대 정의가 어디 있겠나. 예술에도 공예,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이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니 가구도 예술이 되지 못하란 법이 없다. 가구는 쓰임새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슨 가치가 있나? 반면 아트 퍼니처는 언제나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의자가 예술작품이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본래 기능을 넘어선, 또 다른 의미의 유용함을 지니게 되는 거다.
특히 의자를 많이 만들었다. 의자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앉는 장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구 디자인의 총아는 의자다. 여러 가구 가운데서도 가장 구조적이고 조형적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잔상 시리즈 중에는 ‘명상의자’가 여럿 있다. ㄴ자의 길고 단순한 의자 끝에 돌 하나만 놓은 것이 특징이다. 돌은 의자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인 동시에 의자에 앉으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존재다. 돌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의자에 앉아서 공부를 할 수도, 즐거운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명상을 하며 침묵의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최병훈 작가의 30년 전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본관 접견실과 복도에 마련된 소파와 의자다. 최 작가는 1991년 청와대 본관이 지어질 당시 내부 가구 제작을 의뢰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한 손에 도면을 쥔 채 새로 설립될 청와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무를 가다듬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만나 탄생한 가구는 세월의 멋을 입고 예술작품으로 돌아왔다.
30년 전 청와대 가구를 제작하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나?
기본적으로 조선의 가구를 모티프로 했다. 조선의 목재 가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훌륭한 비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본관 복도에서 볼 수 있는 의자는 어좌를 콘셉트로 했다. 중요한 건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다. 이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서울 중심부에 들어설 청와대라는 공간 특성에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
청와대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통령이 지내는 자리는 국가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공간예술의 관점으로 보면 디자인의 총체가 돼야 한다. 청와대도, 용산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보자. 부르봉 왕조 시대의 바로크·로코코 양식을 오롯이 간직한 덕에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지 않았나. 또한 현대의 예술작품이 역사적인 공간에서 호흡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일본의 옛 사찰인 청수사에서는 디자인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청와대에서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 국가 홍보에도 좋고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중요한 건 국가기관의 디자인과 예술품에는 나라의 정신이 녹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K-컬처는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순수예술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틈에 대한민국의 예술도 발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예술과 친해질 수 있나?
나는 운 좋게 20대에 마야·잉카문명 등 전 세계의 위대한 예술품을 많이 만났다. 지구 반대편에 이렇게 엄청난 문화가 있었구나 싶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 작품의 정체성으로 표현된다. 작가가 할 일은 작품에 정체성과 시대성을 담는 것이다. 감상자가 할 일은 단 하나, 일단 다양하게 많이 보는 것이다. 여행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예술과 만난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닐 것이다.
최 작가는 ‘돌과 나무의 작가’로 불린다. 오직 자연의 재료로 가구를 만들기 때문이다. 스타일 또한 간결하다. 거대한 바둑돌을 연상케 하는 벤치, 네모반듯한 나무 상자들을 어슷하게 쌓아 올린 장식장, 등과 엉덩이만 겨우 기댈 수 있는 ㄴ자 구조물 끝에 큰 돌 하나만 툭 놔둔 의자…. 요란한 시대에 그의 작품은 절제와 사색을 이야기한다.
아트 퍼니처의 진수를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청와대 소정원에서 첫 야외 전시가 꾸려진 것. 국내 유수 공예작가의 작품 10여 점이 공개된 가운데 최 작가의 작품 두 점이 함께한다. 물빛으로 반짝이는 매끈한 검은 돌, 먹을 갈아 일필휘지한 듯 유려한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3미터 길이의 벤치가 조용히 방문객을 기다린다. ‘태초의 잔상’ 시리즈 중 2014년 제작한 409번째, 410번째 작품이다. 불뚝 솟은 백악산을 병풍 삼아 청기와가 반짝이는 팔작지붕 아래 돌과 나무의 작가를 만났다.
‘태초의 잔상’이라는 작품명이 다소 어렵다.
내 작품의 기초는 나무인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돌은 억겁의 세월을 거쳐 다듬어진 소재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뒤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돌 안에 담긴 세월을 인간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작품을 만드는 데 대개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 ‘억겁의 시간이 걸린다’고 대답하는 이유다(웃음). 자연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위대함이 있다. 태초의 잔상이라는 말에는 그러한 경이로운 자연이 내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났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까지 만든 이 시리즈 작품만 600개 가까이 된다.
청와대 전시작에 쓰인 돌을 발견했을 때 2년간 멍하니 바라만 봤다고.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현무암이다. 돌을 수입하는 이가 깎을수록 검은 속살이 드러나는 돌이라며 보여주는데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마그마가 분출한 것이 굳어지면서 속은 검고 겉은 회백색인 돌이 된 거다. 게다가 철분이 많아 마찰을 할수록 빛이 났다. 참 재미난 돌이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작업실로 가져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아득했다. 구상만 하다 2년이 흘렀다. 그러다 슥 일필휘지로 그은 듯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전체적으로 돌의 검은 속살이 드러나면서 광택이 나도록 가공하고 중심부는 돌의 겉살이 그대로 표현되도록 거친 느낌을 살렸다. 자연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지도록 한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당도한 게 결국 ‘일필휘지’라니.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뭐가 안 나오니 모든 걸 내려놓는 마음으로 다 생략하고 한 획을 그린 게 그렇게 표현됐다. 때마침 미국 뉴욕 갤러리 관계자와 미팅이 있었는데 당시 먹으로 작품을 구상한 그림을 보여주니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서양엔 일필휘지라는 개념이 없으니 신선했던 거다. 작품을 완성하고 이듬해에는 미국에서도 전시를 했다.
아트 퍼니처는 아트인가? 퍼니처인가?
인간이 스스로 정한 것에 절대 정의가 어디 있겠나. 예술에도 공예,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이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니 가구도 예술이 되지 못하란 법이 없다. 가구는 쓰임새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슨 가치가 있나? 반면 아트 퍼니처는 언제나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의자가 예술작품이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본래 기능을 넘어선, 또 다른 의미의 유용함을 지니게 되는 거다.
특히 의자를 많이 만들었다. 의자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앉는 장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구 디자인의 총아는 의자다. 여러 가구 가운데서도 가장 구조적이고 조형적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잔상 시리즈 중에는 ‘명상의자’가 여럿 있다. ㄴ자의 길고 단순한 의자 끝에 돌 하나만 놓은 것이 특징이다. 돌은 의자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인 동시에 의자에 앉으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존재다. 돌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의자에 앉아서 공부를 할 수도, 즐거운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명상을 하며 침묵의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최병훈 작가의 30년 전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본관 접견실과 복도에 마련된 소파와 의자다. 최 작가는 1991년 청와대 본관이 지어질 당시 내부 가구 제작을 의뢰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한 손에 도면을 쥔 채 새로 설립될 청와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무를 가다듬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만나 탄생한 가구는 세월의 멋을 입고 예술작품으로 돌아왔다.
30년 전 청와대 가구를 제작하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나?
기본적으로 조선의 가구를 모티프로 했다. 조선의 목재 가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훌륭한 비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본관 복도에서 볼 수 있는 의자는 어좌를 콘셉트로 했다. 중요한 건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다. 이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서울 중심부에 들어설 청와대라는 공간 특성에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
청와대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통령이 지내는 자리는 국가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공간예술의 관점으로 보면 디자인의 총체가 돼야 한다. 청와대도, 용산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보자. 부르봉 왕조 시대의 바로크·로코코 양식을 오롯이 간직한 덕에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지 않았나. 또한 현대의 예술작품이 역사적인 공간에서 호흡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일본의 옛 사찰인 청수사에서는 디자인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청와대에서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 국가 홍보에도 좋고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중요한 건 국가기관의 디자인과 예술품에는 나라의 정신이 녹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K-컬처는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순수예술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틈에 대한민국의 예술도 발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예술과 친해질 수 있나?
나는 운 좋게 20대에 마야·잉카문명 등 전 세계의 위대한 예술품을 많이 만났다. 지구 반대편에 이렇게 엄청난 문화가 있었구나 싶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 작품의 정체성으로 표현된다. 작가가 할 일은 작품에 정체성과 시대성을 담는 것이다. 감상자가 할 일은 단 하나, 일단 다양하게 많이 보는 것이다. 여행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예술과 만난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