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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2024-06-03

비즈니스 피플조명


정책주간지 K-공감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한국의 뇌공학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 글로벌 시장 선점 위해 K-뉴럴링크 필요'

    3월 20일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사지가 마비된 29세 청년 놀런드 아르보가 휠체어에 앉아 손발 까딱하지 않고도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공개했다. 아르보는 8년 전 다이빙 사고로 어깨 아래 모든 신체가 마비됐다. 그는 뉴럴링크 임상시험에 참여했고 2024년 1월 두개골에 뉴럴링크 칩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해당 영상에서 아르보는 생각만으로 PC의 마우스를 움직이며 체스 게임과 온라인 게임을 즐겼다. 이 영상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실험처럼 ‘뇌신경계에서 측정한 신호를 해독해 외부 기기를 제어하거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CI(Brain-Computer Interface, 이하 BCI)라 부른다. 뉴럴링크는 2023년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획득한 후 경추·척추 부상이나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루게릭병)으로 마비를 겪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했다.
    뉴럴링크가 아르보의 사례를 공개한 후 BC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마치 스마트폰을 낯설어 하던 인류가 ‘아이폰’을 손에 쥔 뒤로 그 세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처럼 뉴럴링크는 BCI가 인공지능(AI)만큼이나 ‘가까운 미래’ 혹은 ‘다가온 현재’라고 믿게 만들었다.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한국 BCI 연구의 선구자다. 박사과정 때부터 뇌파 연구를 이어온 임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BCI를 접했고 국내 최초로BCI 연구에 뛰어들었다. 임 교수는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비침습적 뇌조절 시스템, 인공지능 기반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뉴로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2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뇌공학 전문가다. 임 교수는 “BCI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먹거리이자 이미 시작된 미래”라고 말했다. 

 
뇌 신호를 해독해 외부 기기를 제어하거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BCI’ 연구를 국내 최초로 시작한 뇌공학자 임창환 교수.  (사진. C영상미디어)


 
지난 3월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가 놀랐다.
    BCI는 머스크의 뉴럴링크로 관심이 높아졌지만 BCI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73년이다. BCI는 크게 침습형과 비침습형으로 나뉜다. 침습형은 두개골을 열고 뇌에 전극을 넣어 뇌파를 읽고 분석한 후 컴퓨터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현재 사람에 대한 BCI 임상이 허용된 국가는 미국, 중국, 스위스 정도다. 반면 비침습형은 머리 밖에서 뇌파를 측정해 뇌의 신호를 읽는 방식이다. 침습형보다 널리 일상생활에 활용된다. 
비침습형 BCI에는 어떤 게 있나?
    예를 들어 뇌파를 파악해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뇌파 기반 기술 엠브레인(M.Brain)이나 뇌파를 분석해 숙면을 돕는 수면케어 시스템인 ‘브리즈(Brid.zzz)’ 등이 있다. 
머스크는 침습형 BCI로 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의 이름을 ‘텔레파시’라고 불렀다.
    뉴럴링크의 첫 임상 목표는 환자가 생각만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는데 아르보의 사례로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칩 하나로 인간의 뇌를 조종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인간의 뇌에 있는 86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는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처리하고 저장한다. 현재 인류는 인간의 뇌신호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다. 이 모든 세포와 신호를 제어하고 조종할 수 있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침습형 BCI의 경우도 뇌를 조종한다기보다 뇌의 신경세포 간 정보교류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전기신호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특정 칩을 심으면 외국어가 유창해진다든지 책 한 권을 순식간에 외우게 된다든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웃음). 인간은 외부 자극을 받으면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인 정보가 말초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는 말초신경으로 명령을 내려 적절한 움직임이나 생체반응을 하게 된다. 질문대로 영화 같은 일이 가능하려면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신경코드를 이해하고 변환해서 그 코드를 주입해야 하는데 아직은 신경코드의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가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뇌는 말하기 직전에 그 말을 청각화한다. 현재의 BCI는 생각을 발화하기 직전의 청각, 손이나 발을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기 직전의 감각을 데이터화해서 그 신호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지가 마비된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혁신이다.
    뉴럴링크는 사지가 마비된 환자나 의사소통 능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을 위해 쓰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실제로 2023년 9월 임상 참가자를 모집할 때 성인 중 사지, 하반신 마비 또는 절단, 실명, 실어증, 청각장애 등을 겪는 사람으로 한정했다. 
뇌질환은 어떤가? 치매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도 BCI는 희망인가?
    침습형 BCI 기술은 앞으로 확장되면 전자약을 보다 정밀하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뇌와 관련한 질환이 왜 생기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원인은 몰라도 증상은 완화할 수 있다. 뇌의 기능을 공학 분야와 결합해 각종 신경 손실로 생긴 신체 마비를 보완할 수 있는 BCI를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BCI는 어떤 상황인가?
    미국 ‘뉴욕타임스’는 21세기 8대 신기술 중 하나로 BCI를 꼽았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성과가 나오고 있는 국가들은 지난 10여 년간 BCI 기술에 꾸준히 투자했다. 정부의 투자로 기업이 뛰어들어 산업 규모가 커졌고 그 예가 머스크의 뉴럴링크다. 한국의 경우 개별 과학자들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다만 이를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BCI는 내부의 경쟁이 아니라 세계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이 그런가?
    언어를 생각해보자. 영어권에서 제작돼 영어로 구동되는 BCI가 발명된다면 환자에게 구동될 때도 영어로 해야 한다. 한국인의 경우 한국어로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기가 어렵다.     독자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머스크가 투자한 뉴럴링크 외에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도 호주의 BCI 스타트업 ‘싱크론’에 투자했다. 세계가 BCI를 미래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다. 국내는 연구자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하려면 대규모 프로젝트를 조직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이를 총괄할 ‘K-뉴럴링크’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의 비침습형 BCI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비침습형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육, 엔터테인먼트, 수면 등을 보조하는 데 쓰인다. 국내 비침습형 BCI 기술 수준은 이미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침습형은 어떤가?
    침습형 BCI 기술에 필요한 신소재공학이나 의학, 전기통신학, 반도체, 기계공학 등 개별 분야에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침습형 BCI에 대한 안전 규정 자체가 없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시도할 수 없다. 정부에서도 관련규제를 놓고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뇌공학뿐 아니라 인류학, 경제학, 철학, 윤리학 등 다방면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BCI에 대한 틀과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BCI에 대한 전 세계적인 집중 투자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BCI 연구로 바쁜 와중에도 대중 강연·관련 회의 등 외부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많아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등 학생이나 대중을 위한 강연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 BCI에 대해 친숙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이 분야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미래도 밝아지리라 믿는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주인공인 네오의 머릿속에 주짓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술을 못하던 주인공은 이후 유단자가 된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주인공과 아바타 접속 장면에서 뇌의 활동을 관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BCI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때로는 오해한다.
    임 교수는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일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며 아직까지는 영화에서처럼 빠르게 뇌의 활동을 관찰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BCI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도, 이해를 돕는 것도 연구자들의 몫이다. 다만 임 교수는 BCI가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거나 미리 낙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BCI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