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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실수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성장한다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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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실수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성장한다
'첫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 수상 김혜영 감독'

    “고맙습니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상영된 후 김혜영 감독이 가장 많이 받은 인사다. 영화가 처음 공개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현장에서도, 그에게 제너레이션 K플러스 수정곰상을 안겨준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영화를 본 관객은 일부러 그를 찾아와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 고맙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부모를 따라 타국으로 이민 간 어린이 관객도 있었고 푸른 눈의 유럽 관객도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제목 자체에 지구 어디에 살든 세계인이 공감했던 것 같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공동연출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 ‘유니콘’을 연출한 김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영화는 열여덟 인영(이레 분)이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한창 클 때라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데 엄마가 없고 집세가 밀렸는데 돈이 없다. 인영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끼니를 때우고 무용단 연습실에 숨어 살면서 예술단 생활을 이어간다. 세상은 그에게 악의적이지도 호의적이지도 않다. 인영 역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웃고 싶을 땐 웃고 울고 싶을 땐 울면서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나간다.
    사실 “괜찮다”는 말을 가장 많이 되뇐 건 김 감독 자신이었다. 영화는 2021년에 촬영했으나 2년 동안 개봉하지 못했다. 크지 않은 규모로 만들어진 영화라 참여한 이들의 수고가 컸다. 20여 명의 어린 여배우들은 육고무, 부채춤, 칼춤 등을 실제 예술단 수준으로 익혀 한 몸처럼 군무를 만들어냈다. 20여 년 영화계에 있는 동안 그가 인연을 맺은 이들은 감독의 첫 입봉작에 십시일반 손을 보탰다. 무술감독 허명행, 배우 손석구 등이 그렇다. 만들어진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는 동안 김 감독의 마음에는 영화와 함께한 이들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었다. 김 감독은 직접 부산국제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김 감독은 수없이 영화를 보고 편집을 하고 가다듬었다. 그 사이 ‘내 자식처럼 아까운 장면도 영화 전체의 그림을 위해 잘라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따뜻한 영화가 어떻게 나한테서 나왔지’라며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다. 김 감독은 부산에서 큰 박수를 받은 것도, 베를린에서 수정곰상을 받은 것도 “모두 꿈만 같다”고 했다. 

 
첫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 K플러스 수정곰상’을 받은 김혜영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영화의 주인공은 10대다. 다들 제일 예쁠 때라고 하지만 스스로는 질풍노도를 지난다.
    인영이 속해 있는 예술단이 그렇다. 무대 위에선 다들 예쁘고 밝게 웃고 있지만 아래에서는 치열하다. 수면 아래에서 쉼 없이 발장구를 치는 백조 같다. 내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런지 그 시절 10대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10대 심사위원이 뽑는 제너레이션 K플러스 수정곰상을 받았다.
    제너레이션 K플러스 수정곰상은 독일 베를린에 사는 11~14세 어린이 7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수상작을 뽑는다. 그래서 더 뜻깊다. 그들의 눈에 우리 영화가 좋게 받아들여졌다는 게 감격스럽다. 상영 후 만난 한 어린이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 고맙다”고 하더라. 사실 영화에는 한국의 전통무용도 등장하고 지금 한국의 10대들이 쓰는 말도 많이 나온다. 그런 게 언어의 장벽과 국경을 넘어 잘 전달될까 싶었는데 많이들 웃으시더라. 처음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가한다는 자체가 감격이었는데 수정곰상 트로피까지 받게 되다니 꿈만 같다. 
보통 감독의 첫 작품에는 그의 정수가 담긴다고 한다.
    이 작품이 내 데뷔작이 될 줄은 몰랐다. 다만 나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금쪽같은 내 새끼’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이야기인데 이 역시 일종의 ‘성장드라마’ 같다. 사실 아이들이 ‘금쪽이’가 되는 데에는 주변이나 어른들의 영향이 크다. 어른들도 실수할 수 있고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안 그런 척한다. ‘사실 진짜 금쪽이는 어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영화에서도 오히려 어른들이 인영을 만나 변화한다.
    예술단 선생님인 설아(진서연 분)는 완벽주의자다. 그는 완벽한 춤을 추기위해 애쓴다. 그런데 인영이 잘 추지 못하면서도 웃으면서 춤추는 걸 보면서 내심 놀란다. 차갑고 깐깐했던 설아는 허술하지만 씩씩하고 밝은 인영을 만나면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아이만 어른에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다. 어른도 아이에게 영향을 받는다. 자라기도 하고. 
감독의 10대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금쪽이었다(웃음). 다행인 건 부모님이 억압적이지 않았다. 고3 때 드라마가 보고 싶어서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집에 왔더니 다음날부터 드라마를 녹화해주셨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엄마랑 이야기도 한참 나눴다. 대학에 들어갈 때가 돼 엄마가 ‘극작과’에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고 그게 영화의 길로 이끌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주셨다. 처음엔 뭘 써야 하나 했는데 어릴 적부터 꾸준히 쓰다 보니 일상의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쓰는 습관이 성인이 돼서까지 이어졌다.
2005년 ‘스크립터’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극작과를 졸업했는데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이른바 연줄이 없었다.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어서 무작정 영화사에 이력서를 돌렸다. 스크립터로 처음 영화를 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이 됐다. 스크립터는 영화 촬영장에서 촬영정보를 기록한다. 촬영은 시간의 흐름대로 찍지 않는다. 그 순간들의 연결을 맞추기 위해 스크립터가 존재한다. 이때의 훈련이 나중에 연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이병헌 감독과 함께 작업을 많이 했다. 영화 ‘스물’, ‘바람 바람 바람’, ‘극한직업’, 그리고 드라마 ‘멜로가 체질’까지.
    개인적으로 ‘은은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병헌 감독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은은한 사람이다. 뭔가 내색을 하지 않고 생색을 내지도 않는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오래간다. 처음에 만나게 된 것도 내가 연출팀에 이력서를 내서다. 그 전엔 일면식도 없었다. 당시 내가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갔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 책가방 때문에 뽑았다고 하더라. 
감독이 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나?
    주변에 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독이라는 역할 자체의 외로움이 있더라. 조연출일 때 감독님께 좀 잘해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현장을 잘 돌아가게 하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필요했구나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현장은 어땠나?
    고마울 정도로 다들 열심이었다. 우리 영화의 배경이 예술단이지 않나. 배우 중에는 무용을 해보지 않은 친구도 있고 무용은 했는데 연기는 처음인 친구도 있었다. 이 두 종류의 배우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무용을 한 친구에게는 무용을 배우고 연기를 해본 친구에게는 연기를 배우면서 합을 맞춰가더라. 20여 명의 배우가 연기뿐 아니라 육고무, 부채춤, 칼춤은 물론 퓨전춤까지 해내야 했다. 그것도 군무로. 그런데 아이들이 다 해냈다. 거기에 김해숙 선생님, 진서연 배우, 손석구 배우까지 모두 제 몫을 다해줬다. 내가 보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이들을 통해 봤다.
감독으로서도 성장했겠다.
    영화는 흔히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감독만 잘해서도 안되고 배우만 잘해서도 안된다.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과 다 마음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잘되는 현장이라는 게 쉽지 않다. 우리 영화는 ‘어른이나 아이나 우리는 모두 실수할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도 감독이지만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런 순간이 오면 누구에게든 사과하려고 했다. 
영화 촬영을 마치고 배우들에게 선물을 해줬다고?
    토슈즈를 하나씩 선물해줬다. 너무 고맙다는 마음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덕에 국내에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만든 작품을 잘 보지 못했다. 보고 있으면 잘못한 부분만 보이고 자책하게 되더라. 이번 작품은 자의든 타의든 계속 보게 됐다. 출품 전에도 계속 편집했고 개봉을 앞두고도 계속 보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괜찮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김 감독은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어린이 심사위원이 “It’s Okay!(‘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의 영어 제목)”를 외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배우들과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짧은 찰나에 지나갔다. 영화의 첫 촬영이 있던 날, 김 감독은 현장에 모인 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이 성장합시다.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이 성장하겠습니다!” 개봉은 늦었지만 덕분에 부산과 베를린을 거쳐 개봉에 이르는 순간까지 모두가 성장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말한다. 누구나 실수한다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어른도 성장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