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정책주간지 K-공감
온기우편함에 고민 털어놓으세요 손으로 꾹꾹 눌러쓴 위로 보내드립니다
'손편지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2012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이다. 여러 나라에서 영화로도 제작됐다. 소설은 수십 년간 비어 있던 나미야 잡화점에 3인조 도둑이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나미야 잡화점은 한때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고민 상담소였다. 누구든지 고민을 털어놓은 편지를 보내면 위로와 공감이 담긴 답장을 보내준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실에도 나미야 잡화점이 필요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위로받고 싶은 순간이 있고 말 못할 고민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온기우편함’을 만든 조현식(34) 사단법인 온기 대표의 생각도 같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외롭고 우울한 순간에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테니까요.”
온기우편함은 익명으로 작성한 고민이나 위로받고 싶은 내용을 적어 넣으면 자원봉사자들이 손편지로 답장해주는 사업이다. 2017년 2월 서울 삼청동 돌담길에 설치한 첫 번째 온기우편함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73곳에 노란색 온기우편함이 설치돼 있다. 온기우편함에 모인 고민들은 ‘온기우체부’라고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답장을 쓴다. 온기우체부는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며 700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이 마음을 담아 손으로 꾹꾹 눌러쓴 답장은 시행 첫 주에 50통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2만 8000통에 달한다.

익명으로 고민을 담아보내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내는 온기우편함을 운영하고 있는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 (사진. C영상미디어)



온기우편함의 시작이 궁금하다.
군 복무 시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현실에서도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먼저 우편함을 제작했다. 직접 도면을 그리고 무작정 목공소에 찾아가 그대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렇게 제작한 우편함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설치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서울 삼청동 돌담길이 최적이라고 생각해 서울시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사업을 설명하고 설치를 요청했다. 그렇게 2017년 2월 삼청동 돌담길에 첫번째 온기우편함이 세워졌다.
온기우편함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나?
‘지금도 잘하고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우편함이 되길 바랐다. ‘따뜻한 우편함’은 너무 길고 따뜻함의 유의어를 찾다 보니 ‘온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 온기우편함을 설치하고 반응은 어땠나?
온기우편함을 설치한 지 일주일 만에 50통의 고민이 도착했다. 예상보다 많아서 놀랐다. 온기우편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고민에 답장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모두의 고민이 다르고 정답도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자원봉사자나 답장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초반엔 정말 어려웠다. 답장을 함께해줄 자원봉사자 10명을 먼저 모집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면서 매주 답장을 눌러썼다.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700명까지 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민을 담아보내는 분들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공감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온기우체부로 자원해 활동하고 있다. 온기우편함에 고민을 담아보내던 분들이 답장을 받고 온기우체부로 활동하기도 한다. 자신이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온기우체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별도의 자격 요건은 없다. 누구나 온기우체부가 될 수 있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답장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온기우체부 활동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2개월 동안 교육받은 다음 공식 온기우체부로 활동할 수 있다.
답장을 쓸 때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면?
첫째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경험을 토대로 공감하며 편지를 쓰는 것이다. 온기우편함에서 보내는 답장이 정답은 아니다. 고민을 공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온기우체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편지를 직접 선택하게 돼 있다.
손편지를 고집한다.
메일이나 누리소통망(SNS) 등 소통도구는 많아졌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매개체는 손편지가 유일하지 않나. 손편지를 쓰려면 어쩔 수 없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꾹꾹 눌러쓴 글씨에 진심이 담긴다. 가장 비효율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하나도 똑같은 게 없다.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그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데 이만한 게 없다.
어떤 고민들이 주로 오나?
온기우편함 전체 편지의 70% 이상이 20~30대 청년들에게서 온다. 그렇다 보니 고민의 주제가 ‘취업’, ‘진로’인 경우가 많다. 취업하고 싶은데 현실의 벽이 높다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들이다. 최근에는 이유 없는 ‘무기력함’에 대한 편지와 은둔에 대한 고민이 담긴 편지가 많이 온다.
우울감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다고.
우울감은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질병관리청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성인의 11.3%, 청소년의 28.8%가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 우울감은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해소되지 않을 경우 우울증으로 심화될 수 있다.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우울감은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누군가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문제는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거다. 온기우편함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극단적인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나?
자살을 암시하거나 극단적인 우울, 가정폭력 등에 대한 고민도 오곤 한다. 이런 고위험군 편지는 전문 심리상담가들이 답장을 하고 정신건강센터와 연결해 예방이나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기차역, 지하철역, 극장 등에도 온기우편함이 생겼다.
더 많은 사람이 온기우편함을 접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공항철도와 서울시설공단, CGV 등과 손잡고 유동인구가 많은 기차역, 지하철역, 극장 등에 온기우편함을 설치했다. 앞으로는 대학병원 암센터나 어린이병원, 추모공원 등에도 온기우편함을 설치해 상실감이나 우울감을 겪는 분들을 위로할 계획이다.
뉴스레터도 발행한다.
온기우편함에 도착한 편지 중 공개에 동의한 사연을 모아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직접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뉴스레터를 보며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들 콘텐츠를 모아 책으로도 발행해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배포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위로·공감하는 오프라인 모임도 열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이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돈이 되는 일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좋았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생각보다 우울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걸 느끼고 있다. 다행히 온기우편함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분들이 많다. 받은 편지를 가방에 넣어놓고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본다는 분도 있다.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감사하게도 많은 자원봉사자분들, 후원자분들이 함께해주고 계신다.
온기의 목표는?
온기우편함이 우리 사회의 심리적 안전망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온기우편함이 하나의 운동이 돼 전국 곳곳은 물론 전 세계로 확장해 마음건강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EDITOR 편집팀
K-공감
전화 : 044-203-3016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갈매로 388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