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노을이 아름다운 풍경의 깊이

2020-12-30

교차로여행 국내테마여행


두물머리 정북토성 따라
노을이 아름다운 풍경의 깊이
'정북토성 /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햇살이 비스듬해진다. 비스듬해진 햇살을 따라 기울어지는 마음 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 쪽으로 기운다. 기우는 것은 저무는 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무는 존재. 하루를 산 어린 고요와 천년을 산 늙은 고요가 저녁 새의 날갯짓을 타고 미호천 강물 쪽으로 날아오른다. 우주의 한쪽이 휘청, 기울어진다.


 
인생사진을 선물하는 해넘이 명소 <정북토성>
    정북동 토성(사적 제415호), 청주 북쪽 미호천 평야지대에 자리한 정방형의 토성. 서울의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더불어 삼한시대나 백제 초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성벽 높이 2.7~4.5m, 둘레 675m로 국내에서 가장 원형이 잘 남아있는 토성의 하나이다. 동서남북의 문이 있었으며 성을 둘러가며 물길을 내었던 해자垓字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정북토성의 풍경 포인트는 일몰 무렵이다(청주시 청원구 토성로 213번길).
    풍경에도 깊이가 있다. 켜켜이 쌓이고 다져진 시간의 깊이, 적막의 깊이가 무수한 떨림을 만드는 풍경. 그리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마저 깊어지게 만드는 곳. 그런 장소의 힘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언제였는지 아득하다면 정북토성에 가 볼 것을 권한다.

 
(左) 정북토성 해자     (右) 정북토성 성문터

    풍납토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인 정북토성. 그곳이 간직한 풍경의 깊이를 제대로 만나려면 오전보다는 오후가 좋다. 햇살이 비스듬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운다는 건 저문다는 뜻, 아득한 시간의 저편에 있었던 토성의 주인들, 그들의 나라도 기울고 저물었다. 마한의 목지국이라든가, 백제라든가 그런 왕국의 시간은 기울고 저물어 마침내 우리 앞에 풍경으로 피어났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아름다운 해넘이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가 바삐 움직인다. 정북토성이 나라 안에서 손꼽히는 일몰 출사지라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호천의 평지 들판에 자리 잡은 정북토성은 산 위에 성벽을 쌓아올린 산성에 비해 위압적이지 않다. 낮은 곳의 높이는 3미터도 되지 않아 몇 걸음이면 성벽 위로 오를 수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고, 성을 둘러 물길을 내었던 해자垓字의 흔적도 발굴되었다. 길게 이어진 토성언덕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정방형인 토성의 둘레가 675m이니 언덕길의 길이도 꼭 그만큼일 테지만 마음은 자주 먼 곳으로 기울어져 걸음을 멈추게 된다.
    뉘엿해진 해가 토성 언덕에 걸린다. 기울어진 햇빛이 풍경에 녹아든 사람의 마음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온다.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천 년 전 바위에 새긴 미소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정북토성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정하동 마을 입구, 실개천이 있는 길가에 있다.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 신라 말인 9세기 후반이나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한다. 화엄종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부처를 조각한 마애불은 매우 드물어 마애불 순례자들에겐 귀한 명소다(청주시 청원구 정하동 산 9-1).
    마애불이 있는 길가는 멈추기에 좋은 곳이다. 천 년 전의 간절한 누군가가 바위에 새긴 부처님은 길 위에서 헤매는 어떤 미물과도 눈을 맞출 자세가 되어있다. 무수한 한뎃잠을 자면서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잃지 않은 그 모습이 애틋하고, 귀하고, 아름답다.
    정하동의 야트막한 바위산 자락에 새겨진 부처님은 마애불로는 보기 드문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님의 진신眞身(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이며 광명의 부처이고, 화엄의 부처다. 화엄의 부처가 계신 곳은 특별한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속세이다.
    그래서일까. 정하동 마애불의 수인은 오른손이 왼손 검지를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이다. 왼손은 중생과 사바세계를, 오른손은 부처와 진리의 세계를 뜻하기에 양손을 감싸 쥔 손모양은 중생과 부처의 세계가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하동 마애불은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모습이 아름답다. 큰 눈에 비해 작게 새겨진 입매의 미소는 비스듬한 서쪽 햇살을 받을 때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림자의 각도가 바위 속의 미소를 건져 올리는 그때쯤이면 문득 깨닫게 될까. 정하동 마애불의 뒷면이 부처의 뒷모습이 아닌 자연석의 바위이듯이, 슬픔의 뒷면, 상처의 뒷면에도 얼마든지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유난히 크게 새겨진 바위 속 부처님의 두 귀. 바라고 구하는 세상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마애불의 두 귀는 천년 세월 길위의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어떤 한숨이든 털어놓자. 그리고 허심무심虛心無心, 빈 마음이 되어 돌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