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비경이 품은 역사와 전설,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을 가다

2023-04-18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테마기행
비경이 품은 역사와 전설,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을 가다
'물의 나라 충북 - 충북의 물길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가다(괴산Ⅰ)'

    신선의 이야기도 역사의 이야기도 다 품고 흐르는 선유구곡과 화양구곡, 그곳에서 만난 풍경이 마음에 남아 마음속에도 선유구곡, 화양구곡이 흐른다. 사람도 자연의 하나니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자연은 말없이 전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구곡의 9곡 파천. 파천의 암반바위 위로 맑은 물이 흐른다.

신선과 인간이 함께 노는 선유구곡
    선유동(仙遊洞), ‘신선의 놀이터’. 그 계곡 아홉 가지 경치에 신선들이 놀던 이야기를 붙여 선유구곡이라 했다. 
    1곡 ‘선유동문(仙遊洞門)’,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정도로 에둘러 여길 만 하다. 동문(洞門)이란 동천(洞天)과 맥을 같이하는데,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 그런 비경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니, 그러니까 선유구곡은 신선과 사람이 함께 노는 곳이다. 사람이 신선이 되기도 하고 신선이 사람처럼 놀기도 하겠다. 그곳 경치가 그렇게 만들 만하다. 
    옛 사람들 보기에도 선유구곡이 보기 좋았나 보다. 1700년대 초반 사람 이중환이 전국 8도를 돌아다니며 산수경계와 인문 사회지리까지 통달하고 쓴 책 <택리지>에도 선유구곡을 두고 ‘산과 계곡이 제법 아름답다’고 썼으니 말이다. 그 이전 사람 퇴계 이황 또한 이 계곡에서 1년 가까운 세월을 경치를 즐기고 자연을 벗 삼았다 전한다. 
    1곡 선유동문, 2곡 경천벽, 3곡 학소암, 4곡 연단로, 5곡 와룡폭(포), 6곡 난가대, 7곡 기국암, 8곡 구암, 9곡 은선암. 선유구곡의 이름을 퇴계 이황이 지었다고 한다. 
    아홉 가지 경치에서 놀던 신선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첫머리에 선유동문이 있다. 계곡에 고였다 흐르는 물빛이 초록으로 맑다. 물속에서 솟아난 거대한 바위 절벽 꼭대기에 누군가 선유동문이라는 한자를 새겼다. 여름이면 글자가 새겨진 바위절벽 아래에서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신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 그 경계부터 신선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놀고 있는 것이다.  

 
左) 괴산군 청천면 선유구곡의 1곡 선유동문. 사진 오른쪽 위  바위 절벽에 새겨진 선유동문이라는 한자가 보인다.
右)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구곡의 9곡 파천. 바위에 파천이라는 한자가 새겨졌다.


    선유동문과 마주보고 있는 경천대는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바위 절벽이다. 학소대는 경천벽을 지나 계곡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보인다.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선계의 새, 신선과 함께 내려온 학이 이곳에 머물렀던 건 아닐까. 
    신선들이 먹는다는 장생불사의 약, 금단을 만들었다는 연단로는 푸른 물 흐르는 계곡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커다란 바위 꼭대기에 금단을 만들었다는 옴폭 파인 작은 돌이 보인다. 와룡폭(포)은 비스듬히 누운 폭포다. 그 물줄기를 타고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난가대는 위가 편평한 커다란 바위다. 
    난가대에서 가까운 곳에 기국암이 있다. 비경을 배경으로 커다란 바위 위에 두 사람이 앉아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던 나무꾼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늙어있었고 바둑 두던 사람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두 사람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선들이었고,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바위가 기국암, 나무꾼이 바둑 두는 신선들을 보던 바위가 난가대라는 옛 이야기가 재미있다. 기국암 옆 구암은 거북이를 닮았다. 그 바로 위 커다란 바위는 퉁소를 불면서 달과 함께 노닐었다는 신선들의 거처, 은선암이다.   
전설의 풍경, 화양구곡 파천부터 능운대까지 
    선유구곡을 지난 물길은 화양구곡으로 이어진다. 화양구곡은 전설의 풍경과 역사의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다. 역사의 풍경에는 조선시대 사람 우암 송시열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등의 이름을 얻으며 화양구곡이라 불리는 자연은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 더 깊어진다. 
    흐르는 물처럼 걷는다. 선유구곡을 지나온 물길이 화양구곡을 빚었고, 그 맨 위에 만든 풍경이 화양구곡의 9곡 파천이다. 계곡 바닥 전체가 바위다. 그 위로 물이 흐른다. 얼마나 오랜 세월 물결이 스쳤을까? 계곡 바닥을 이룬 암반바위 전체에 물결 모양이 새겨졌다. 이랑과 고랑에 비치는 햇빛에 빛과 그림자가 물결처럼 요동친다. 윤슬이 물결의 세월을 머금은 바위의 이랑과 고랑에서 유효하다. 그 옛날 이 풍경에 파천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도 같은 것을 보았으리라. 파천은 반짝이는 용의 비늘을 꿴 것 같은 풍경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파천 다음에 만난 거북바위는 사람들 다니는 숲속 산책길에 있었다. 계곡 쪽으로 머리를 두고 소나무숲을 내려가려는 형상이다. 8곡 학소대는 하늘에서 푸른 학이 내려와 둥지를 틀었다는 곳이다. 맑은 계곡물 위에 우뚝 선 바위 절벽 어딘가에 학의 둥지가 있을 것 같았다. 7곡 와룡암은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이다. 6곡 능운대는 구름을 찌를 듯 솟은 바위 절벽의 형상을 두고 붙인 이름이다. 능운대에서 첨성대가 보인다. 파천부터 능운대까지가 전설의 풍경이라면 5곡 첨성대부터 1곡 경천벽까지는 역사의 인물 송시열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풍경이다.       

 
화양천과 달천이 만나는 합수지점을 지난 물길이 화양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사진 왼쪽 위에 보이는 다리가 화양천에 놓인 다리  화양교다.

역사의 풍경, 화양구곡 첨성대부터 경천벽까지 
    조선시대 당파 노론의 영수이자 효종 임금의 스승이었던 송시열,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던 첨성대를 지나면 푸른 물결 굽이쳐 흐르는 계곡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송시열의 거처였던 암서재다. 암서재를 아우르는 그 계곡을 금사담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맑은 계곡물 바닥에 깔린 금가루 같은 모래 때문이다. 송시열의 장인 이덕사의 8대손 이형부가 그린 화양구곡도에서 금사담 암서재를 볼 수 있다. 이형부의 그림에 화양구곡도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송시열의 10대손 송낙헌이다. 
    효종 임금의 승하에 송시열이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던 바위가 읍궁암이다. 바위 위에 두 개의 네모난 홈이 파였다. 하나는 읍궁암이라는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운 자리고, 다른 하나는 읍궁암의 유래를 새긴 비석이 있던 자리다. 그 비석은 읍궁암 옆 도로가에 있다. 
    읍궁암 부근에는 송시열을 모신 화양서원과 만동묘가 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권상하가 세웠다. 1917년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만동묘 제사를 금지했다. 1937년에는 위패를 불사르고 만동묘정비 비문의 글씨를 정으로 쪼아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1942년에는 건물을 철거하고 묘정비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1983년 괴산군에서 묘정비를 찾았다. 그 일대를 정비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2곡 운영담은 물에 비친 구름의 풍경을 두고 이른 말이다. 금빛 모래와 푸른 물이 어우러진 풍경이다. 물가로 걷는 발자국마다 고운 모래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한 발 한 발 물가로 다가선다. 바람에 인 잔물결이 찰랑거린다. 물 건너 바위 절벽 아래 운영담이라고 새긴 한자가 보인다. 물결 없는 날은 그 글자가 물에 비친다고 한다.     
    1곡 경천벽 앞에 섰다. 물 건너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을 보고 있으면 하늘을 떠받치고 우러른다는 뜻의 경천벽이 느껴진다. 경천벽이라고 새겨진 한자가 있다고 하는데, 마모 되고 마른 이끼가 껴서 글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화양동문이라고 새긴 한자를 보았다.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화양구곡을 지난 물길이 더 큰물, 달천과 만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