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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나무, 기원의 나무, 생(生)의 나무 고마운 나무와 함께 피고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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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나무, 기원의 나무, 생(生)의 나무 고마운 나무와 함께 피고
'충북의 숲과 나무?단양Ⅱ'

    단오 그네 뛰던 나무는 지금도 푸른데, 그네 뛰는 아이들은 이제 볼 수 없다. 감자밭에서 일하던 농부 아저씨가 500년 다 된 느티나무에서 그네 뛰며 놀던 어린 시절 생각에 허리를 편다. 느르메기 입구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는 성황당을 품은 당산나무다. 문수사 대웅전 앞 돌배나무는 300년 넘게 기원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서 있고, 보발리 말금마을 200년 넘은 선 소나무와 누운 소나무 두 그루는 밭을 지키는 순한 개와 함께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양군 매포읍, 어상천면, 가곡면에서 만난 고목들의 옛 이야기.  

 

가곡면 보발리 말금마을 200년 정도 된 소나무 두 그루. 선 나무 누운 나무 혹은 암수소나무로 불린다.

감자꽃 피고 단오 그네 뛰던 느티나무 그늘 아래
    대가천 평동교를 건너면 매포읍행정복지센터다. 주차장 한쪽에 선 느티나무 한 그루가 15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동교를 건너 대가천 앞에 서서 느티나무 고목을 바라보고 하시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500년이 다 된 느티나무가 옛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감자밭에서 만난 아저씨는 하지가 지나면 감자꽃이 핀다고 했다. 커다란 고목 옆에 감자꽃 하얗게 피어난 마을을 생각했다. 옛날부터 이 마을을 삼산동, 굽말로 불렀다. 삼산동의 유래는 모르겠으나 굽말은 마을이 말굽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알고 계셨다. 
    아저씨는 감자밭에서 빤히 보이는 느티나무 고목 이야기를 꺼내며 밭일을 하시던 손을 쉰다. 어릴 때 단오날이면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달아 동네 아이들이 그네를 뛰고 놀았다며 허리를 펴고 나무를 바라보셨다. 단오 그네 뛰던 옛 생각을 하셨는지, 아저씨는 지금은 그런 게 다 사라졌다며 말끝을 흐렸다. 느티나무 고목은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월에 당제를 지내는 당산나무이기도 하다. 

 
어상천면 대전리(황학동)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와 효자각  성황당


    어상천면 대전2리 황학동 마을에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와 성황당이 남아 있다. 성황당과 느티나무를 하나로 묶어 금줄을 쳤다고 하니, 30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이 성황당을 품고 있는 당산나무나 다름없다. 그 옆 길 건너에 200년 넘은 느티나무도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삼일에 마을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황학동의 우리말 이름은 느르메기다. 그러니까 옛 느르메기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는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쉼터였고, 마을의 이정표이기도 했으며, 마을을 지키는 장승 역할도 한 셈이다. 옛 느르메기 마을에는 부모님상을 당하고 시묘살이 3년은 물론, 평생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했다는 효자 이야기가 전해진다. 효자각이 느티나무 고목 옆에 있다.  
300년 돌배나무 앞 대웅전, 당제 지내는 느티나무와 극락전
    상천면 임현리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많다. 폐교가 된 단산중고등학교 옆 쉼터에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다. 그중 네 그루는 250년 넘은 느티나무다. 이곳에서 어상천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약 1㎞ 가다보면 길 왼쪽에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든 쉼터가 또 있다. 정자 주변에 2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어상천초등학교 운동장 가에 선 나무들 앞을 지난다. 초등학교운동장은 언제 봐도 정답고 알뜰하다. 그런 마음으로 걸어서 연못 앞에 다다랐다. 장미꽃 핀 연못 울타리 앞에 서서 연못 뒤에 우뚝 선 느티나무 고목을 보았다. 연못 둘레를 돌며 나무를 살피는데 아저씨 한 분이 나무 그늘을 찾아와 의자에 앉는다. 여름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이 적막하다. 

 
어상천면 방북리 문수사 돌배나무 고목과 대웅전


    방북리 돌배나무 고목을 보러 문수사를 찾아갔다. 주차장에서 올려보는 풍경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돌배나무 고목은 아닌듯하여 종무소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갔다. 대웅전 앞에서 만난 스님에게 문수사의 옛 이야기를 들었다.
    대웅전이 원래는 지금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틀어져 있었는데 오래전에 지금처럼 고쳐 지었다. 그러고 보니 숲속에 있는 산신각과 조금 전 주차장에서 보았던 커다란 나무 아래 극락전은 한 방향을 보고 있는데 대웅전만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돌배나무 고목은 대웅전 부근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하사한 나무라고 알려졌으며, 돌배나무에서 나는 돌배를 매년 나라에 진상했다고 전해진다. 낡고 작은 극락전 옆에 선 느티나무 고목은 예로부터 당산나무였다. 수령을 측정하지 않아 정확한 나무의 나이는 모르지만 한눈에 보기에 수백 년은 거뜬히 지난 모습이었다. 주차장에서 보았던 커다란 나무 중 한 그루인, 장독대 옆 나무 또한 오래된 가죽나무라고 스님이 일러주었다. 
    아까부터 대웅전에서 누군가 기도를 올린다. 돌배나무 그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돌배나무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을 수백 년 동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극락전 옆 당산나무 앞에도 누군가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곡면 사평리 새별공원 데크길에서 본 풍경. 억새밭과 남한강이 넓게 펼쳐졌다.

남한강 억새밭 느티나무 고목과 말금마을 누운 나무 선 나무
    향산리에는 느릅나무가 많았다. 단양군 자료에 따르면 늪실, 면위실, 가린여울, 가재골 등의 자연 마을이 향산리를 이루고 있는데, 옛날에 늪실에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옛 늪실 마을은 아니지만 현재 가곡면 향산리 602에 300년 넘은 느릅나무가 있고, 가곡면 가대2리 마을회관 앞에는 500년 넘은 느릅나무가 있다. 
가곡면 사평리 새별공원에 가면 남한강과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새별공원 데크길을 덮은 나무 그늘을 걷는다. 푸른 억새밭이 강가에 펼쳐졌다. 강가로 내려가 억새밭을 걸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 물결에 취할 무렵 새별공원 데크길에 줄지어선 나무 중에 굵은 쇠파이프에 가지를 얹은 나무를 보았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였다. 1972년, 1990년 두 번의 대홍수 때에도 강가에서 살아남은 나무다. 300년 넘는 세월을 견디었으니 그 동안 겪은 풍상이 어디 홍수뿐이었겠는가.
    마지막 발걸음은 보발리로 향했다. 숲에 차 한 대 다닐 수 있는 길이 계속 이어지다 시야가 트이고 하늘이 열렸다. 해발 고도 400m 정도 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햇볕이 가득 고였다. 말금마을이다. 마을 어귀 밭 한쪽에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하늘로 솟아 자란다. 그 옆 소나무는 낮게 엎드렸다. 200년 넘은 소나무들인데, 사람들은 두 나무를 일러 ‘암수소나무’ 혹은 ‘선 나무 누운 나무’라고 부른다. 
    두 그루 소나무 앞에 서서 시야를 가릴 것 없는 풍경을 바라본다. 소나무 앞에서 밭을 지키는 순한 개와 함께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