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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소설] 도끼목수

2022-11-16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 소설] 도끼목수
'글. 박순철'

    “여보 아버님이 내라고 한 재산목록 다 준비했어요?”
    “거의 했어요.”
    동남 씨는 대기업 중견간부로 근무하다가 석 달 전에 명예퇴직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처지다.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성실히 근무한 덕분에 자력으로 아파트도 한 채 장만하고 아들딸 남매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그의 아버지 송영길은 국민학교 졸업도 못 하고 서울의 먼 친척 집에 맡겨졌다. 친척 아저씨는 목수여서 어린 송영길을 데리고 다니면서 잔심부름을 시키며 먹여주고 재워주곤 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지 아저씨는 그에게 목수 일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배운 것은 없어도 눈썰미는 있었고 워낙 열심히 했기에 그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우물도 한 우물만을 파야 한다고 계속 따라다니며 그 일을 배우다 보니 귀도 열리고 집 짓는 기술도 차츰 늘어갔다. 결혼하고서는 혼자서도 집 짓는 일을 맡아서 할 정도가 되었지만, 체계적으로 건축을 공부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도끼목수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당시 집 한 채 지으면 절반은 남았다. 남들처럼 부실 공사가 아니라 좋은 건축자재를 써도 그 돈이면 충분했다. 신용이 쌓이니까 자연 일거리도 밀려들었다. 그렇게 40여 년 집 짓는 일을 하다 보니 어떤 곳이 노른자라는 것도 훤히 알게 되어 투자하는 곳마다 재산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느 해 2층 한옥을 짓다가 인부의 부주의로 대들보가 떨어지면서 같이 땅으로 떨어져 허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젊어서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가자 그 후유증은 결국 서울 생활을 조기 청산하고 고향 마을로 내려오게 했다.
    유유자적 텃밭을 벗 삼아 지내는지도 벌써 10년여, 마을 사람들은 송 영감을 자린고비로 부르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의 고희(古稀) 때 자식들이 외국 여행 다녀오라며 내놓은 돈 1천만 원을 어느 장학회에 익명으로 희사하고, 다음 달 그 금액만큼 보태서 다시 자녀들에게 돌려주었다. 아프리카 검은 땅 불쌍한 어린이를 위해 매월 쌀 두 가마 값을 보내고 독거노인도 남모르게 돕는 사실을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위로 둘은 아들이고 밑으로 둘은 딸이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이 사무치기에 자식들은 모두 대학교육까지 마치게 했다. 셋째 딸은 배우자를 잘 만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막내딸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약간 고전은 하고 있지만, 워낙 성실한 사람이어서 쉬 일어설 것이라고 송 영감은 속으로 믿고 있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몇 년 잘 다니더니 사표 내고 사업을 시작한 게 잘못이었다. 사표 낸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야금야금 사업자금으로 가져간 돈이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은 된다. 하지만 도무지 발전이 없다.
    이윽고 한가윗날 사 남매가 고향 집에 모이자 송 영감 부부가 한복을 차려입고 자녀들 중앙에 앉았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나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배우지도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나는 헐벗고 굶주려도 내 새끼들에게는 그런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하는 사업마다 잘 풀려서 이제는 옛말 하면서 살아도 될 성싶지만 한번 길든 근검절약 정신은 바뀌질 않는구나. 물론 너희들도 열심히 살았겠지만?”
    “…”
    대답이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다음 장남이 입을 열었다.
    “저도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식들 학업도 마치고 해서 앞으로 큰돈 들어갈 일도 없습니다. 이게 모두 아버지가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그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아내가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그러는 둥 마는 둥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고맙구나. 둘째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느냐?”
    “죄송합니다. 운이 따라주지 않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은 하지 않고 운만 바라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
    둘째 아들은 대답을 못 하고 머리만 숙이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다. 오직 너희들은 재산을 얼마나 나누어 주는가 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니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자. 그보다 내가 해오라고 한 것을 내놓기 바란다.”
    먼저 장남이 재산목록을 제출했다. 그런데 자신은 재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되니 자신의 몫을 바로 밑에 동생에게 주기 원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큰 며느리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지더니 냅다 소리를 지른다.
    “당신, 큰애 장가가는 데 무슨 돈으로 아파트 사주려고 그렇게 허세를 부려요. 나는 그 말 동의 못 해요.”
    그 말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알았다. 어미도 없는 집에 시집와 살림하느라 고생했다. 내가 왜 모르겠니.”
    둘째 아들은 월세 2백만 원짜리 계약서에 빚이 5억 원이었고, 셋째 딸은 7억짜리 빌라와 3천만 원의 예금 증서를, 막내딸은 재산목록 없이 오직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살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글 한 장을 내놓았다.





    “둘째를 제외하곤 모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여 여간 다행한 게 아니다. 큰 애는 자신의 상속분을 둘째에게 주고 싶다고 했지만, 며느리가 반대하니 그럴 수는 없다. 모두에게 오늘 제출한 재산목록의 금액만큼 상속해주겠다. 다만, 둘째는 빚이 5억이라고는 하나 2백만 원짜리 월세에서 생활한다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고 더구나 가져다 쓴 돈이 다른 형제들 몫만큼은 될 것이니 한 푼도 줄 수가 없구나. 내 별명이 도끼목수이듯 나는 계산 같은 것은 잘 못 한다. 그러니 내 방식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크게 어긋난 적도 없다.”
    방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똑같이 나누어 줄 것이란 기대를 걸고 모였는데 의외의 발표에 모두 놀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특히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더 심했다.
    “작은 오빠! 그 아파트 전세로 있는 것 아니우, 그리고 5억 빚은 뭐유?”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이 XXX야.”
    잔뜩 화가 난 둘째 아들이 바로 밑의 여동생을 향해 눈알을 부라리며 내뱉은 말이다.
    “막내는 가진 것은 하나도 없으나 앞으로 일어설 용기가 가상해 보여 5년 거치 10년 상환 무이자로 10억 원을 빌려줄 테니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고 잘해 보아라. 나머지 재산은 우리 두 늙은이가 죽을 때까지 쓰고 남으면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변호사에게 내 유언장을 전할 것이니 그리 알기 바란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