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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한국인, 역동적 김치문화
2023-11-17
문화 문화놀이터
무형유산의 맛·멋·흥
역동적 한국인, 역동적 김치문화
'같은 이름이라도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김치'
김치의 가짓수는 흔히 200~300가지라고들 한다. 김치의 가장 주된 재료의 이름 따서 명칭을 붙인 뒤 어림잡아 셈한 숫자이다. 하지만 같은 이름이라도 젓갈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해산물이나 채소가 한 가지라도 더 첨가된 순간 더는 같은 김치가 아니다. 그래서 김치의 가짓수를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에 같은 이름의 술이라도 집마다 그 빚는 방식이 달라 ‘가양주(家釀酒)’라 했는데 김치도 술 못지않게 ‘같은 이름, 다른 맛’이 존재한다. 그래서 혹자는 “대한민국 엄마의 수만큼이나 김치가 다양하다”라고도 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창의적인 김치의 존재는 문화종주국만이 가질 수 있는 원천 자원이다.
한민족 역사만큼 이어 온 김치와 김치 담그기
11월은 이 땅에서 오랜 세월 농사를 지으며 삶을 꾸려 왔던 한국인의 마음이 한층 더 조급해지며 몸도 분주해지는 달(月)이었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1168~1241)는 한겨울을 나기 위해 무를 소금에 절여 저장해 두고 먹었던 풍습을, 여말선초의 권근(1352~1409)은 10월에 거두어들인 채소로 맛있게 김장김치를 담가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음을, 조선 후기 박윤묵(1771~1849)은 3개월 겨울을 김장김치로 견뎌야 하는데 무와 배추 수확량이 어느 정도나 될지 근심하는 푸념을 글로 남겼다. 매일 한 끼도 빠짐없이 밥상에 올랐던 김치가 음식을 장만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뿌리 깊게 이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단서다.
한편 글로는 남겨지지 않았으나, 한국인의 김장 풍속을 알 수 있는 통일신라 때 유적도 있다. 충북 보은에 위치한 법주사의 돌항아리는 승려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소금에 절여 보관했던 용기였고, 불타고 흔적만 남겨진 남원 실상사의 장고(醬庫) 터는 간장, 된장, 장아찌 등 각종 발효식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사찰에서 젓갈 대신 감칠맛을 내는 데 썼던 김장김치용 간장도 여기에 있었다.
종류와 재료, 담금법의 변화 속에서도 유지되어 온 김치 정체성, 발효
‘김장’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입동을 전후해 겨우내 먹을 가장 기본 반찬인 김치를 준비하는 집안 행사이다. 선인들의 글과 유적을 통해 파악되듯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김치의 형태, 들어가는 재료, 주로 먹었던 김치의 종류 등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지금은 ‘김치’ 하면 누구나 통배추 사이에 김칫소(양념)를 켜켜이 넣고 담은 빨간색 통배추김치를 떠올리지만 1600년대까지 김치의 재료는 오이, 무, 가지가 주류였고 간장과 소금에 담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앞서 소개한 통일신라 때의 유적이나 고려시대 기록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김치도 모두 소금과 간장에 담근 김치이다. 김치의 저장성과 풍미를 더하기 위해 파, 마늘, 생강, 미나리, 제피(초피, 분디라고도 함) 등 양념 채소류가 사용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남미가 원산지인 붉은색 고추가 젓갈의 비린 맛을 잘 가려 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게 되면서 매운맛을 내던 제피 대신 고추가 양념의 주류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김치의 색은 붉어졌고 때마침 배추 재배가 확산되면서 ‘빨간색 통배추김치’가 김치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김치의 겉모습은 시대에 따라 사뭇 달라졌지만, 핵심 제조원리는 동일하다. 주재료가 무엇이든 생채소를 소금에만 절여 사용했고, 마늘을 포함한 양념 채소가 꼭 들어갔다. 김치를 만들 때 이러한 양념 채소는 부패균의 성장을 막고 좋은 유산균의 생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잘 발효된 김치의 유산균이 상당 부분 마늘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세계김치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우리 선조들이 김치를 만들기 시작한 초기부터 마늘 등 양념 채소를 활용해 유산균 발효에 따른 저장성 연장과 맛 향상을 노렸음을 추정하게 한다. 술이나 식초, 술찌꺼기 등에 절여 최대한 부패균 성장을 막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맛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중국이나 일본의 채소절임과는 담금법이 확연히 달랐다.
김치 맛의 역동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살아있는 생물, 유산균
다른 나라 채소절임은 대부분 사람 몫의 역할 비중을 높이고 자연인 미생물의 몫을 가급적 최소화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채소를 말리거나 훈연하거나 데친 후, 강한 산(酸)이나 알코올 또는 강력한 방부효과를 지닌 향신료를 넣음으로써 인간이 애초에 좋은 미생물이든 나쁜 미생물이든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긴 저장 기간 일정한 맛이 유지되는 대신 유산균의 생성량도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김치는 사람이 해야 할 몫과 자연인 미생물이 담당할 몫이 공존하는 음식이다. 김치는 미생물 간의 자율 경쟁을 통해 좋은 균이 나쁜 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인간은 좋은 균의 활동을 돕기 위해 주재료를 소금물에 절이는 과정을 추가하고, 용기에 담은 뒤 차갑고 온도 변화가 적은 곳으로 옮긴 후 공기를 차단하는 작업을 하는 역할을 한다. 인위적 개입이 최소화된 김치 유산균은 초기에 일단 형성되면 자기들끼리 경쟁하면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에 김치 맛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갓 담은 김치, 잘 익은 김치, 시어진 김치, 묵은김치 등 취향에 따라 용도에 따라 선택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똑같은 재료로 담아도 집집마다 김치의 맛이 다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김치를 몇십 년간 담아 온 베테랑 주부조차 재료를 버무려 용기에 담은 뒤 일단 뚜껑을 덮고 나면 다 익어 꺼내기 전까지 그 맛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맛의 불확실성이 크다. 실패하면 겨우내 먹어야 할 식량을 망쳐버릴 확률도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뚜껑을 열었을 때 김치 맛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싶어 집집마다 전수되어 온 비법이 넘쳐나고, 맛만 있다면 이 재료 저 재료로 한 번씩 시험 삼아 만들다 보니 지역마다 색다른 김치가 계속 생겨났다. ‘겨울 반양식’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김치를 만들면서도 위험부담이 큰 모험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덕분에 시간상으로는 만든 직후부터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맛을, 공간적으로는 지역 특산물에서 유래된 재료와 유산균이 창조해 낸 맛의 변주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한겨울 온도 편차가 크지 않은 땅속에서 유산균이 가장 잘 생성된다는 원리를 경험적으로 터득한 조상들의 지혜 덕에 가전제품 중 처음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로 탄생시켜 요즘 각 가정에서 모든 식재료의 전천후 저장고 역할을 하며 한국인의 자랑이 된 김치냉장고는 덤이다.
대신 모험을 감수한 보상도 크다. 그 대가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김치 재료 자체에서 유래된 영양물질과 더불어 발효되는 과정에서 아토피 개선, 항비만, 항암효과 등 기능성을 지닌 유산균과 대사산물이 생성됨으로써 국제적인 건강식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른 집 김치와 맛이 다른 우리 집 김치 맛을 포기할 수 없어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김치 담그기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도 되었다. 재료 하나하나(11)가 모여 22가지 이상의 기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을 내포한 11월 22일은 음식으로서는 최초로 ‘김치의 날’이라는 이름의 국가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데 이어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영국에서도 기념일로 채택되었다. 김치의 창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김치 담그기에 담긴 나눔과 배려 정신을 세계가 주목한 결과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유발하는 유산균의 생명 활동을 억제하지 않았던 창의적 방식이 김치에서는 재료, 색, 맛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더니,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로부터 비롯된 세계인의 갈등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데도 기여하게 된 것이다. 통제보다 자율을, 틀에 박힌 방식보다 모험을 택하여 도전해 온 한국인의 역동성이 김치에서도 발휘된 덕분이다.
한민족 역사만큼 이어 온 김치와 김치 담그기
11월은 이 땅에서 오랜 세월 농사를 지으며 삶을 꾸려 왔던 한국인의 마음이 한층 더 조급해지며 몸도 분주해지는 달(月)이었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1168~1241)는 한겨울을 나기 위해 무를 소금에 절여 저장해 두고 먹었던 풍습을, 여말선초의 권근(1352~1409)은 10월에 거두어들인 채소로 맛있게 김장김치를 담가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음을, 조선 후기 박윤묵(1771~1849)은 3개월 겨울을 김장김치로 견뎌야 하는데 무와 배추 수확량이 어느 정도나 될지 근심하는 푸념을 글로 남겼다. 매일 한 끼도 빠짐없이 밥상에 올랐던 김치가 음식을 장만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뿌리 깊게 이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단서다.
한편 글로는 남겨지지 않았으나, 한국인의 김장 풍속을 알 수 있는 통일신라 때 유적도 있다. 충북 보은에 위치한 법주사의 돌항아리는 승려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소금에 절여 보관했던 용기였고, 불타고 흔적만 남겨진 남원 실상사의 장고(醬庫) 터는 간장, 된장, 장아찌 등 각종 발효식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사찰에서 젓갈 대신 감칠맛을 내는 데 썼던 김장김치용 간장도 여기에 있었다.
종류와 재료, 담금법의 변화 속에서도 유지되어 온 김치 정체성, 발효
‘김장’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입동을 전후해 겨우내 먹을 가장 기본 반찬인 김치를 준비하는 집안 행사이다. 선인들의 글과 유적을 통해 파악되듯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김치의 형태, 들어가는 재료, 주로 먹었던 김치의 종류 등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지금은 ‘김치’ 하면 누구나 통배추 사이에 김칫소(양념)를 켜켜이 넣고 담은 빨간색 통배추김치를 떠올리지만 1600년대까지 김치의 재료는 오이, 무, 가지가 주류였고 간장과 소금에 담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앞서 소개한 통일신라 때의 유적이나 고려시대 기록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김치도 모두 소금과 간장에 담근 김치이다. 김치의 저장성과 풍미를 더하기 위해 파, 마늘, 생강, 미나리, 제피(초피, 분디라고도 함) 등 양념 채소류가 사용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남미가 원산지인 붉은색 고추가 젓갈의 비린 맛을 잘 가려 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게 되면서 매운맛을 내던 제피 대신 고추가 양념의 주류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김치의 색은 붉어졌고 때마침 배추 재배가 확산되면서 ‘빨간색 통배추김치’가 김치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김치의 겉모습은 시대에 따라 사뭇 달라졌지만, 핵심 제조원리는 동일하다. 주재료가 무엇이든 생채소를 소금에만 절여 사용했고, 마늘을 포함한 양념 채소가 꼭 들어갔다. 김치를 만들 때 이러한 양념 채소는 부패균의 성장을 막고 좋은 유산균의 생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잘 발효된 김치의 유산균이 상당 부분 마늘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세계김치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우리 선조들이 김치를 만들기 시작한 초기부터 마늘 등 양념 채소를 활용해 유산균 발효에 따른 저장성 연장과 맛 향상을 노렸음을 추정하게 한다. 술이나 식초, 술찌꺼기 등에 절여 최대한 부패균 성장을 막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맛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중국이나 일본의 채소절임과는 담금법이 확연히 달랐다.
김치 맛의 역동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살아있는 생물, 유산균
다른 나라 채소절임은 대부분 사람 몫의 역할 비중을 높이고 자연인 미생물의 몫을 가급적 최소화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채소를 말리거나 훈연하거나 데친 후, 강한 산(酸)이나 알코올 또는 강력한 방부효과를 지닌 향신료를 넣음으로써 인간이 애초에 좋은 미생물이든 나쁜 미생물이든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긴 저장 기간 일정한 맛이 유지되는 대신 유산균의 생성량도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김치는 사람이 해야 할 몫과 자연인 미생물이 담당할 몫이 공존하는 음식이다. 김치는 미생물 간의 자율 경쟁을 통해 좋은 균이 나쁜 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인간은 좋은 균의 활동을 돕기 위해 주재료를 소금물에 절이는 과정을 추가하고, 용기에 담은 뒤 차갑고 온도 변화가 적은 곳으로 옮긴 후 공기를 차단하는 작업을 하는 역할을 한다. 인위적 개입이 최소화된 김치 유산균은 초기에 일단 형성되면 자기들끼리 경쟁하면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에 김치 맛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갓 담은 김치, 잘 익은 김치, 시어진 김치, 묵은김치 등 취향에 따라 용도에 따라 선택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똑같은 재료로 담아도 집집마다 김치의 맛이 다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김치를 몇십 년간 담아 온 베테랑 주부조차 재료를 버무려 용기에 담은 뒤 일단 뚜껑을 덮고 나면 다 익어 꺼내기 전까지 그 맛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맛의 불확실성이 크다. 실패하면 겨우내 먹어야 할 식량을 망쳐버릴 확률도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뚜껑을 열었을 때 김치 맛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싶어 집집마다 전수되어 온 비법이 넘쳐나고, 맛만 있다면 이 재료 저 재료로 한 번씩 시험 삼아 만들다 보니 지역마다 색다른 김치가 계속 생겨났다. ‘겨울 반양식’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김치를 만들면서도 위험부담이 큰 모험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덕분에 시간상으로는 만든 직후부터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맛을, 공간적으로는 지역 특산물에서 유래된 재료와 유산균이 창조해 낸 맛의 변주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한겨울 온도 편차가 크지 않은 땅속에서 유산균이 가장 잘 생성된다는 원리를 경험적으로 터득한 조상들의 지혜 덕에 가전제품 중 처음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로 탄생시켜 요즘 각 가정에서 모든 식재료의 전천후 저장고 역할을 하며 한국인의 자랑이 된 김치냉장고는 덤이다.
대신 모험을 감수한 보상도 크다. 그 대가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김치 재료 자체에서 유래된 영양물질과 더불어 발효되는 과정에서 아토피 개선, 항비만, 항암효과 등 기능성을 지닌 유산균과 대사산물이 생성됨으로써 국제적인 건강식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른 집 김치와 맛이 다른 우리 집 김치 맛을 포기할 수 없어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김치 담그기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도 되었다. 재료 하나하나(11)가 모여 22가지 이상의 기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을 내포한 11월 22일은 음식으로서는 최초로 ‘김치의 날’이라는 이름의 국가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데 이어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영국에서도 기념일로 채택되었다. 김치의 창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김치 담그기에 담긴 나눔과 배려 정신을 세계가 주목한 결과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유발하는 유산균의 생명 활동을 억제하지 않았던 창의적 방식이 김치에서는 재료, 색, 맛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더니,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로부터 비롯된 세계인의 갈등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데도 기여하게 된 것이다. 통제보다 자율을, 틀에 박힌 방식보다 모험을 택하여 도전해 온 한국인의 역동성이 김치에서도 발휘된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