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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스스로를 향한 긍지로 새로운 농촌 문화의 주도층이 되다

2023-05-30

문화 문화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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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스스로를 향한 긍지로 새로운 농촌 문화의 주도층이 되다
'덕산 청년마을'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위치한 청년마을㈜은 ‘청년들의 지속적인 유입이 농촌 공동체 활성화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고민에서 청년과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2019년에 설립되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석주 대표는 이미 2005년부터 대안학교를 거쳐 다문화센터, (사)농촌 공동체 연구소 등의 활동을 통해 해체되어가는 농촌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께 활동하는 공동체원들 또한 “자연 노령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그는 기존 공동체가 수년간 겪은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청년’에게 전달하며 든든한 지지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농촌의 정체성을 지키며 주민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농촌의 새로운 주체가 될 ‘청년’. 그 치열한 도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청년마을㈜은 지난 ‘2021년 충북에서 살아보기’ 사업을 통해 한번 방문했던 곳이다. 당시 전국에서 ‘청년 문화기획자로 농촌에서 살아보기’라는 타이틀을 보고 이곳 덕산으로 온 청년들을 인터뷰했었는데, 이번 취재 목적으로 방문한 그곳에서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마을 축제를 기획하고 농사를 배우던 앳된 청년이 이제는 어엿한 농촌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또 다른 청년을 맞이하고 있다니, 반가운 감동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한석주> 도시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에요. 경쟁이 치열한 수준을 넘어서 취업 절벽의 수준이니까요. 하지만 농촌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에서 조금만 도와주고, 청년이 본인의 역량 개발에 힘쓴다면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할 수 있어요. 교육 강사로서 활동할 수도 있고, 문화기획자로 지역에 즐거운 문화를 만들 수도 있겠죠. 그렇게 청년이 도전하는 일이 농촌에서는 다양한 의미의 서비스가 돼요. 농촌 주민들은 그동안 청년이 없어서 누리지 못했던 이 서비스를 누리게 되는 것이고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이러한 경험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게 만들어요. 그리고 그들이 꼭 이곳 제천 덕산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고향이나 다른 지역에서 인생을 펼치는 힘을 가지게 해주죠.
    물론 이렇게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일을 하며 그들끼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를 주도하는 계층이 되는 과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렇기에 이곳 덕산 청년마을㈜과 같이 기존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네트워크와 물적 자원을 지원해주고, 청년이 활동할 수 있는 ‘문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죠. 이처럼 청년과 다양한 지역 자원이 연계되는 만큼, 저희는 한명 한명의 청년들이 아주 소중해요. 청년들이 도시의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내려온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걸 알거든요. 

 
덕산 청년마을(주) 대표 한석주


    용기 있는 청년 몇 명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살만한 농촌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그 몇 명의 청년에게서 발견하였다. 지금의 사회가 정량적인 성과를 통해서만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촌이 저물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을까. 배울수록 서울에 가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교육받는 세대이다. 농촌에 남은 자들은 스스로 패배의식을 갖는다. 농촌 자체에서도 원형의 공동체 문화를 찾기 힘들고, 옛사람의 지혜는 단순히 기록되어야 하는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만을 인정받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적인 공간이 소멸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지 못한 채,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집값과 일자리를 고민한다. 도시화는 농촌을 소비하고 태우면서 진행해왔다. 농촌을 제물로 바치고, 생태와 환경을 찾는 이 아이러니 속에서 ‘농촌 정체성’을 찾는 한 대표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남는다.
    <한석주> 농사를 짓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이 ‘농촌 정체성’을 가지는 일은 중요해요. 그래서 문화기획자로 이곳에 발을 디딘 청년이라도 하루에 일부는 농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그러다가 5명 중 1명이라도 농사로 본인의 생계를 고민하는, 그렇게 농촌의 정체성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어찌 되었든 본인들 삶의 터이니까요. 현재 청년들은 농촌 주민과 함께 생태·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중심이에요. 불행히도 지금의 농촌은 다분히 환경적이지 못하고 이미 지속 가능한 농촌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생태·환경’을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극히 생태 환경적이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도시화로 희생된 농촌에 다시 생태·환경을 요구하는 상황이 찾아왔죠. 농촌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도시의 생태계도 위협을 받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농촌 역시 과거의 공동체가 무너졌고, 사람이 필요했던 농토에는 이제 기계만이 필요할 뿐이에요.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고귀한 산물이 이제는 단순히 돈을 위해 팔아야 하는 물건이 되었어요. 그 어떤 인격적인 가치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농촌도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죠. 그렇기에 생태·환경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농촌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역할에서 청년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고요.
    2020년 청년마을㈜은 ‘사회적 농업 거점농장으로써 충북, 강원, 세종 지역의 사회적 농장들을 지원함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로 대두되는 청년들에게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역량형성과 일과 숙소 등 생활기반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청년이 농촌에 진입할 수 있는 사회적 장벽을 낮추는 일임과 동시에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과정을 시행하고 있는 청년마을㈜의 또 다른 명칭은 바로 ‘청년농촌정착플랫폼’이다. 
    <한석주> 이곳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누릴 수 없는 서비스가 많아요. 예를 들면 서울에서는 택시나 장애인 이동서비스를 호출하면 바로 오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면 차가 없는 산골에 살고 있는 30대 청년은 두 발이 다 성하지만 이동할 수 없으니, 이동에 ‘장애’를 가진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이러한 측면에서 농촌에서 청년은 사회적 약자가 분명해요. 그래서 저희는 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농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사회적 농업’이죠.





    “사회적 약자인 청년이 사멸해가는 농촌에서 농사와 배움을 통해 농촌의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는 ‘청년농촌정착플랫폼’을 지향합니다.” - 청년마을㈜ 누리집 발췌

    <한석주> ‘사회적 농업’을 통해 우리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해요.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스스로가 삶을 자기중심으로 바라봐야 하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농촌에 살기는 힘들어요. 당장 옆에 도시에 가보면 온통 화려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니까요. 과거 80년대 제가 청년이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원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다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게끔 키워져 왔던 것 같아요. 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대안 교육을 생각하게 되었고, 제천에 있는 ‘간디 학교’로 오게 된 거예요. 사회가 규정하는 틀 안으로 들어가는 교육 말고, 자기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기에 청년마을㈜에 오는 청년들도 본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해요. 기존에 문화공동체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고, 문화로 만들어내는 과정이죠. 

 
청년농촌청착플랫폼 '덕산 청년마을(주)'의 대표 한석주. 청년과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덕산 청년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청년들이 본인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농촌이 바라는 청년의 삶, 청년이 바라는 농촌의 삶’이라는 주제로 사회적 농업 워크숍을 여는가 하면 ‘청년 귀농 장기교육과정-청년이 만드는 농촌’이라는 귀농 교육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22년 여름에 진행되었던 ‘시골 언니 프로젝트-농촌은 잘 모르지만 살아보고는 싶어!’ 역시 농촌과 청년 그리고 시대적 이슈를 담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골 언니 프로젝트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사업으로 전국 8개 지역에서 동시 진행되었는데, 덕산 청년마을㈜에서는 5박 6일간 마을에서 머무르며 목공, 제빵, 비건 요리,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동시에 월악산 등산, 계곡 물놀이, 물멍과 같은 휴식프로그램과 참여자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청년 여성 동료들을 만나 공동체를 구성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까지 진행되어 청년이 만들어가는 농촌 공동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도시 밖의 새로운 삶을 생각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농촌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 대표는 가장 생태적인 것은 그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도시와 농촌 모두 다시 생태·환경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포용과 배려, 서로 돌보고 함께 누리는 상생의 가치를 우리의 삶에 담는 것. 그것은 사람과 자원 모두가 선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청년’이 존재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