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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의 통쾌 발랄한 역습

2023-01-20

문화 문화놀이터


잇다, 놀다
민화의 통쾌 발랄한 역습
'리소그래피 민화작가 김누리'

    김누리 작가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리소그래피로 민화를 작업한다. 핑크, 네온그린, 오렌지 등의 컬러와 역동적인 그래픽이 살아 숨 쉬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더 강렬하고 화려하다. 민화에 덧씌워진 지루하고 고루하다는 이미지를 전복하고 싶다는, 지금 한국화 장르에서 가장 뜨거운 김누리 작가를 만났다. 



 
물음표가 잇따라 더 즐거운 리소그래피 작업
    때로 조화는 부조화에서 비롯되고, 불협화음에서 화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요즘 미술계가 주목하는 신성 김누리 작가의 ‘힙한 민화’처럼 말이다. 과감한 컬러 조합, 역동적인 그래픽이 특징인 김 작가의 민화는 나름의 여정을 거쳐 탄생했다. 그는 대학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했고, 국내의 한 디자이너 브랜드에 취업해 의상 그래픽 작업을 맡게 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즐겁게 오가던 어느 날, 작은 의문부호가 고개를 들었다.
    “아날로그에 디지털을 입히면 어떨까, 구식 플랫폼에 최신식 기술을 덧씌우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샘솟았어요. 프로그램의 기능과 툴을 전문적으로 배우면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左) 호랑이세화1, 300×300(mm), 종이에 전통안료, 2022
(우스꽝스럽기도, 용맹하기도 한 호랑이의 표정을 살린 작품으로 한올한올 올라간 털들이 매력적) (자료제공: 김누리)
右) 초충도, 420×297(mm), risograph, 2022(푸른 빛의 괴 석과 그 주위에 날아다니는 형광빛 나비, 그리고 활짝 피어 있는 꽃이 특징)(자료제공: 김누리)



    지평을 넓히고 싶었던 그는 디즈니가 세운 학교로 명성을 떨치는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칼아츠)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한번은 색채학 수업과정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소개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그는 미리 준비해간 민화의 색을 소개했고, 이를 본 외국 친구들과 교수님은 신선하고 아름답다며 놀라워했다. LA에 있는 박물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그가 느낀 건 중국, 일본 그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한국 그림에 대한 아쉬움 이었다. 이러한 갈증은 민화에 대한 그의 마음을 더 확고히 했다.
    그는 낯선 기법인 리소그래피(lithography)와 페인팅으로 민화를 그린다. 리소그래피는 실크스크린 방식의 디지털 인쇄 프린팅 기법이다. 종이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서 잉크를 통과시키면 그림이 완성된다. 작업 전 스케치를 하지만, 예상과 결과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회 인쇄에 한 가지 색만 프린팅이 가능한 만큼, 여러 색으로 작업하는 경우 아래와 위로 겹쳐질 색들을 고심하면서 작업한다. 프린팅은 컬러로 나오지만, 데이터는 흑백으로만 전송하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하는 대신 머리로 상상해야 한다.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작업을 하면서 결과물을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긴장감과 묘미를 동시에 느껴요. 어렵지만 그게 리소그래피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형광색 잉크를 작업에 많이 사용해요. 뻔해질 수 있는 조합에 형광 잉크 한 스푼을 첨가하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탄생해요. 여기에 리소그래피 잉크를 사용하면 민화 고유의 화려함이 배가되는 것 같아요.” 

 
左) 파초도, 550×780(mm), risograph, 2021(겨울엔 마른 듯 보이지만 봄에 새순이 돋아  기사회생이라는 의미가 있는 파초를 표현)(자료제공: 김누리)
右) 일월오봉도 낮, 420×297(mm), risograph, 2020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편에 놓였던 병풍인 ‘일월오봉도’를 리소그래프로 재구성)(자료제공: 김누리)


'김누리식' 색채, 기법, 상상력으로 부활하다
    선조들이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빌며 그렸던 민화에 김누리 작가는 Z세대다운 생각과 위트를 섞는다. 다양한 전통적 상징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 과감한 컬러 조합과 역동적인 그래픽으로 생동한다. 우리 민족의 해학과 감각이 담겨 있지만 작가만의 차별화된 독창성이 잘 드러나 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는 고궁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을 찾습니다. 조선시대의 그림, 자수, 옷 등 다양한 사료에서 기본적인 모티브를 가져오고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은 주변의 모든 것에서 답을 구해요.”
    김 작가는 민화의 모티브 중 ‘호랑이’를 제일 좋아한다.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모습이라서다. 호랑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호랑이 가죽을 펼친 <호피도>도 그렸다. 전형적인 것을 비전형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한국 민화의 매력이라고 느낀다. 전시 중에 만나는 관람객의 반응은 민화를 그리는 또 다른 동력이다.
    “작년 가을 성수동에서 전시회를 할 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 많은 작품을 배치했어요. 찬찬히 둘러보시며 제게 와서 그림이 참 좋다고 말해주신 관람객분들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그는 인스타그램(@_nnurii)을 통해서도 활발히 소통한다. 작품은 기본이요, 작업영상이나 스케치, 일상 등 다양하게 업로드된 피드까지, 관객과의 소통 방식 또한 Z세대 아티스트답다.
v“올해는 이전보다 좀더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어요. 다양한 재료, 새로운 시각으로 이전과 또 다른 느낌의 그림들을 보여드릴 거예요. ‘민화’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