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길손을 배려한 마을 어귀 동구나무, ‘가을 숲’이 들려주는 가을 깊은 이야기

2022-11-22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테마기행
길손을 배려한 마을 어귀 동구나무, ‘가을 숲’이 들려주는 가을 깊은 이야기
'충북의 숲과 나무?음성Ⅰ'

    [한밤 동구 밖/낙엽 떠는 소리에/뒤척이다 돌아눕는/예순, 어머니/가을밤](졸시 ‘가을밤’ 중에서). 가을도 깊어 11월, 마을 어귀 동구나무 고목, 바람에 떨던 마른 잎이 대처에 나간 자식 같아 잠자리에 들어도 생각난다. 아픈 데는 없는지, 끼니는 잘 챙겨 먹는지, 부모는 늘 자식 생각이다. 서리 내린 11월 깊은 밤이 어머니 마음에서 서걱거린다. 동구나무가 있는 충북 음성군 시골마을을 지나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음성 원남면 보천리 양짓말 동구나무 앞에서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시절, 전형적인 농촌 시골마을의 형국인 ‘배산임수 문전옥답’ 풍경이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양짓말에 펼쳐졌다. 산이 마을을 품고 마을 앞에 들판이 있으며 들판 앞에 냇물이 흐른다. 마을을 품은 산은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톱니봉, 모래봉으로 부르고 있는 산이며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은 마송천이다. 마송천 남쪽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에 신라가 끌어들인 당나라 군대가 주둔했다하여 ‘당구랫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들녘이 펼쳐졌다. 
    양짓말이라고 새겨진 비석을 지나 냇물 옆길을 따라 걷는다. 남향으로 들어선 마을이니 햇볕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마을 이름도 양짓말이다. 마을 어귀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동구나무다. 

 
원남면 보천리 양짓말 250년 넘은 느티나무. 보호수로 지정됐다. 마을 정자나무다. 사진 오른쪽 아래 마을 어귀 동구나무가 보인다.


    마을 비석 앞으로 시내버스가 느릿느릿 와서 멈춘다. 아주머니 한 분이 차에서 내려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신다. 한껏 차려입으신 걸 보니 어디 좋은 데 다녀오시나 보다. 동구나무가 보기 좋다고 인사를 건네니, 마을 안에도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다신다. 나무 이야기로 인사를 나눈 터, 아주머니는 마을 안 정자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쉬는 곳이라신다. 보호수로 지정된 250년 넘은 느티나무였다. 
    동구나무 쪽으로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주머니는 동구나무 앞에서 나무를 바라보시며 이 나무는 마을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쉬던 나무라고 하신다. 
    동구나무는 길 위의 나그네를 위해 마을에서 심은 나무였다. 옛날에는 마을 마다 어귀에 동구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으니, 길손을 배려하는 옛 사람들의 마음을 배운다. 
    마을로 가는 아주머니 뒷모습을 동구나무 아래 서서 바라보았다. 불편해 보이는 다리, 느린 걸음,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나이테처럼 몸에 새겨졌다. 저 작은 몸으로 일구어낸 자식들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서리 내린 논바닥, 된바람에 떠는 마른 잎, 깊은 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에 대처에 나간 자식 생각에 뒤척이다 잠드는 어머니의 가을밤 이야기가 양짓말 동구나무에도 깃들었다. 
가섭사 500년 느티나무에도 단풍 들었네 
    가섭사 500년 느티나무를 찾아가는 길에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450년 된 은행나무에 들렀다. 크고 작은 항아리가 놓인 장독대 아래 누군가 도토리를 널어놓았다. 그 뒤 언덕에 은행나무가 삐쭉 솟았다. 그 모든 풍경에 햇볕은 골고루 내려앉는다. 장독대 옆을 지나 은행나무 언덕으로 올라갔다. 은행나무 뒤 언덕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보호수로 지정된 450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 옆에 작은 은행나무가 있었다. 전에도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서 자라는 자식 나무가 있는 풍경을 보았던 터라 고목 옆 작은 나무도 그러리라 여겼다. 부모 나무가 자식 나무쪽으로 몸을 기울여 보듬는 모습이었다. 두 나무에도 가을이 깊다. 

 
가섭사 500년 느티나무와 그 옆 바위절벽과 숲에도 단풍이 물들었다.


    가섭사로 가는 길, 마을에서 본 먼 풍경에 가섭산 능선 바로 아래 둥지를 튼 가섭사가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가섭사 500년 느티나무에 단풍이 들었다.     
    가섭사 500년 느티나무는 극락보전에서 삼성각으로 가는 길 첫머리에 있었다. 가섭사는 1300년대 중후반에 나옹 스님이 건립했다고 알려졌다. 임진왜란 때 불탄 건물을 다시 지었다하니, 500년 느티나무는 불타는 절을 지켜보았을 것이고, 화마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 가섭사를 찾은 이들에게 전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느티나무 고목 아래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놓은 샘이 있다. 샘물에 단풍 낙엽이 가라앉았고 물 표면에 하늘과 구름과 느티나무 고목이 비친다. 쫄쫄쫄 떨어지는 물방울에 인 파문은 샘에 고인 세상에 불어가는 바람 같았다. 
    느티나무 고목 아래 서서 고개를 젖히고 나무 끝을 보았다. 거대한 나무는 바위 절벽과 숲에 피어난 단풍과 어울렸다. 그 옆으로 극락보전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 보였다. 풍경 끝에 매달려 있어야할 물고기 조형물이 없다. 바람을 받아 안고 종을 울려야 할 물고기 조형물이 없으니, 풍경은 울리지 않는다. 울리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소리 없는 소리가 풍경에서 울려나와 단풍빛을 머금고 저 아래 사람 사는 마을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左)백야수목원 숲 산책길. 사진 오른쪽 나무가 수양회화나무다.    
右)널어놓은 도토리와 장독대와 은행나무 고목이 어울린 원남면 마송리 풍경


승전의 고갯길 느티나무 고목을 보고 숲에 깃들다
    1950년 7월4일부터 7월10일까지 감우재와 그 주변 마을에서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제1사단 제11연대는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과 전투를 벌여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을 섬멸하고 승리했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국군이 최초로 승리한 전투였다. 
    음성읍 소여리 감우재에 그날의 승리를 기억하고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터를 마련했다. 지금은 무극전적국민관광지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곳에 있는 전승기념관에 가면 감우재 전투 당시 유탄에 맞아 구멍이 뚫리고 깨진 감우재 마을의 종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쟁 당시 감우재 전투의 현장을 고스란히 바라보았던 살아있는 생명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감우재 고개를 지금도 지키고 있는 350년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다. 
    감우재 서쪽 금왕읍 백야리 산골짜기에는 가을 풍경으로 둘러싸인 백야자연휴양림 백야수목원이 있다. 휴양림으로 가는 길, 용계저수지를 비추는 햇볕에 물비늘이 반짝인다. 백야자연휴양림 안 백야수목원을 찾아갔다. 수목원 입구에 산철쭉 군락이 있다. 한때 덩쿨식물로 뒤덮였을 작은 통로를 지나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지난 계절 흐드러지게 피어났을 꽃과 풀과 나무들이 이제는 그 이름표만 남겼다. 
    방금 지난 덩쿨식물통로에는 큰꽃으아리, 인동, 다래, 으름이 자라 열매를 맺었었겠다. 바위취와 쑥부쟁이, 둥글레 자리 위에는 단풍 낙엽이 쌓였다. 작은 저수지 건너편 숲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단풍 든 나무와 푸른 나무가 어울린 산 그림자가 저수지에 비친다. 
    단풍쉼터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산기슭까지 내려온 단풍이 길을 안내한다. 만병초원 위 쉼터에 앉아 오늘 보았던 깊은 가을 풍경을 되새겨본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생각나는 건 따듯한 정, 그리고 그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