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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길 고양이

2022-09-21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길 고양이
'글. 박종희'

    똑똑 똑똑, 동생의 구두굽 소리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보니 신기했다. 어떻게 동생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는지. 얼굴이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는 마치 엄마를 만난 듯 동생 뒤를 따랐다.
    도심 고층 아파트에 사는 동생은 10년째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 10년 전 겨울, 어미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다 동생한테 들켜 얼음이 된 그날부터였다. 





    친정은 딸 셋 아들 셋 육 남매다. 동생은 다섯째로 태어났지만, 위로는 언니, 오빠가 있고 아래로 막내 여동생이 있다 보니 거의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딸만 여섯이었던 집 장녀로 태어난 친정어머니는 마치 아들에 포한이라도 진 듯 아들 선호 사상이 강했다. 어찌 보면, 아들을 낳지 못해 평생 기 한 번 못 펴던 외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을 보며 자란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정어머니는 결혼 후 바로 아들 형제를 낳아 외할머니 팔자는 면했지만, 아들 편애가 심했다. 당신이 딸 부잣집 맏이로 살아왔으면서도 말끝마다 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하셨다. 그나마 나하고 막내 여동생은 친정어머니의 시야에 들 수 있었지만, 남동생과 막내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여동생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은 형편에 따라 살기 마련이라더니 동생은 어릴 때부터 악착같았다. 어쩌면, 형제들 사이에 끼여 존재감이 없다 보니 일찍부터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먹을 것이 생기면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잘 먹고 잔병치레 한 번 없이 자랐다. 그런 여동생한테 어머니는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며 가끔 야단을 치곤 했다.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던 동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취직한 동생은 방 얻을 돈이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나한테 부탁을 했다. 당시, 꽤 큰돈을 대출받아 방을 얻어주었는데 동생은 이자 한 번 밀리지 않고 대출금을 다 갚았다. 야무진 성격만큼이나 자기 앞가림을 잘하던 동생은 미래가 보장되는 남자를 만나 집에 손 내밀지 않고 결혼도 했다. 
    우리 집 육 남매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 형제간에 우애 좋은 집으로 소문이 났었다. 나이 오십 살이 넘도록 나도 동생과 부딪힌 적이 없었다. 내가 동생을 아끼는 만큼 동생도 나를 믿음직한 언니로 생각한다고 믿었다. 하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친정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였다. 동생은 부모님이 늘 언니만 걱정하고 자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며 나를 향해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제나 언니가 집안의 자랑거리였고 어머니는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만 했다며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를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동생이 하는 말이 억울하고 속상해 언제 그랬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생각해보니 위로 오빠 둘을 낳고 딸을 낳은 거라 나는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던 것 같다. 몸이 약해 늘 다른 자식들보다 더 관심을 받은 것도 그렇고.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잡아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던 것도 여동생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여 년을 자매로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갈등이 표출되면서 하루아침에 동생과의 사이가 서먹해졌다. 동생의 하소연을 듣고 나니 그동안에 동생이 하던 사소한 행동들이 이해가 됐다. 유난히 형식과 겉치레에 치중하며 남의눈을 너무 의식한다고 생각했는데, 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위치로 살아온 상처 때문이었던 것이다. 동생도 누군가에게 주목받으며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은 정이 많고 따뜻하지만, 매사에 똑 부러진다. 내가 밥을 사면 다음에는 자기가 밥을 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형제간에도 셈이 정확하다. 그런 동생이 책갈피처럼 쌓인 응어리를 꺼내며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동생의 길고 고독했던 밤들이 어른거려 눈앞이 자꾸 부예졌다. 집고양이가 길고양이의 고통을 모르듯 처음에는 차별당했다고 따지는 것이 억울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동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동생이 속마음을 드러내기 전에는 내가 누리고 살아온 혜택이 당연한 줄만 알았다. 아니, 부모님한테 나만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자랐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 번도 깨닫지 못했던 성장 과정을 돌아보다가 가슴이 울컥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랬다. 나도 동생처럼 오빠들만 잘해준다고 어머니의 가슴을 흔들어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독 아들만 챙기는 어머니한테 심통 부리던 내 마음이 그 시절 동생의 마음과 같았으리라. 
    어머니한테 오빠들만 위한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왜 여동생이 나 때문에 가려진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린 마음에 늘 인정받는 내가 동생은 얼마나 부럽고 얄미웠을까.
    어느 누구도 존재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섯째로 태어난 것이 동생의 의지가 아니고, 길고양이도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존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동생은 10년 동안 길고양이를 돌보며 자신만의 생존법 내지는 자존감을 키워나갔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길냥이 맘 노릇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마음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동생은 가끔 그 맛에 세상 사는 맛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방금 동생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나왔던 아기 고양이가 어느새 형제 고양이 두 마리를 더 데리고 나왔다. 밥 주는 게 힘들어 이사 가고 싶다던 동생이 고양이 밥을 챙기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대단해 보였다. 말이 10년이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오늘, 고양이 밥을 주면서 동생은 무슨 기도를 전할까. 어떤 제목인들 어떠랴. 길냥이를 거두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집안 일도 잘 풀린다는 동생이 미덥다. 길냥이 때문에 웃음이 많아진 동생이 그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