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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달라졌네,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다니!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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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무형문화재
세상이 달라졌네,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다니!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는 막걸리'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26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막걸리 빚기 문화재 지정 기념행사가 있던 날, 나는 무대에 올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막걸리 빚기의 매력'이라는 주재로 기조 연설을 했다. 2009년에 막걸리학교를 열고, 강좌를 운영하면서 막걸리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기에, 이날의 감회는 새로웠다.  
오랜 세월이 빚은 문화재 지정
    1986년 11월 1일 ‘향토술 담그기 국가무형문화재’로 문배주, 면천두견주, 경주교동법주가 지정된 이후, 35년만에 새로운 술 하나가 국가가 지켜야 할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1986년에는 사라져가는 것을 구조하는 차원에서 지정했다면, 2021년의 막걸리는 널리 퍼져있는 문화를 선양하는 차원에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것이 막걸리인 데, 굳이 막걸리 빚기라 하여 지정하게 된 동기는, 다분히 외교적인 측면도 고려되었다. 막걸리 빚기가 독특한 한국 문화 라는 것을 선포하고, 그 문화를 통해 다른 나라와 구별짓는 문화적 다양성을 띤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막걸리가 유네 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으로 선정되면 좋겠다는 논의도 진행되었다.

 
재료와 제조 방법이 비교적 간단한 막걸리는 많은 사람이 만들어 즐기는 술이다.


    막걸리에 앞 글자 ‘막’자 때문에, 막걸리를 다른 술에 견주면 하찮게 하대해왔던 경향이 있었다. 막국수, 막사발, 막춤, 막말, 막소주까지 한때는 하층문화와 함께 해서, 곤궁하여 내키는 대로, 마구 쏟아내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막자에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뜻도 들어있다. 막걸리는 막 걸러냈다는 뜻으로, 지금 막, 거칠게라는 뜻이 있지만,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즉석에서 신선한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막걸리는 음식에 견주면 완성되는 시간이 길지만, 다른 술에 견주면 짧다.
    여름날이면 5일만에도 되는데,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일반 막걸리들은 10일 안팎의 발효 기간을 거쳐 병에 들어간다. 막걸리는 애초에 양조업자가 개발한 상품이 아니라, 집에서 농주나 손님맞이 술로 빚어 즐겨왔던 발효 음료가 양조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겨울에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장을 만들고, 여름이면 밀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만드는 게 우리네 살림살이의 지혜였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이웃나라에 막걸리와 흡사한 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서로를 가까이 놓고 견주면 아주 다르다. 쌀로 만든 탁주로 일본에 니고리자케와 도부로쿠가 있지만, 니고리자케는 흐린 청주라고 할 정도로 도수가 높고, 도부로 쿠는 아예 거르지 않고 떠내는 술이다. 도부로쿠는 19세기 까지는 일본 민가에서 널리 빚어졌지만, 민가의 술 빚기가 금지되면서 대중성을 잃어버렸다.
    중국은 소수민족이 사는 지방을 여행하다보면 쌀로 된 미주를 맛볼 수가 있는데, 단맛이 강하고 점성이 강해서 빠이주에 밀려 존재감이 떨어 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에 가면 항아리에 빨대를 꽂아서 빨아마시는 지오깐이라는 곡주가 있고, 히말라야 등정하러 네팔에 가면 막걸리를 연상시키는 창이라는 술을 만날 수 있다.
    곡물로 된 도수가 낮은 탁한 술이 지역마다 있지만, 막걸리처럼 한 나라 안에서 대중화되고 인기를 얻어 민족 전체가 즐기는 쌀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곡물로 된 또 다른 대중화된 술을 꼽는다면, 단연 보리로 된 맥주를 꼽을 수 있다. 보리로 빚은 저알코올 탄산음료가 맥주라 면, 쌀로 빚은 저알코올 탄산음료가 막걸리라, 막걸리는 맥주에 비견할 만하다.
    이쯤 되면 주식으로 삼는 쌀로 술을 빚는다고,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를 내놓고 자랑할 만하다. 주식을 재료로 쓰다보니 언제든지 집에서 빚을 수 있다. 유럽은 밀이 주식이라, 부식쯤 되는 보리로 술을 빚는 셈이다. 수수로 빚는 고량주, 사탕수수로 빚는 럼주, 용설란으로 빚는 데킬라, 보리로 빚는 위스키, 포도로 빚는 와인을 살펴보아도, 그 재료가 주식은 아니다. 막걸리는 밥을 짓는 쌀로 만드니, 액체 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쌀밥처럼 흰 술이고, 도수까지 낮으니, 낯선 술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부담없이 권할 만하다. 막걸리를 권하면서, 모내기할 때 농주로 쓰였고, 국을 담던 막 사발에 담아 마시기도 했고, 양조장으로 할아버지 심부름 갔던 아버지 이야기도 풀어놓을 수 있으니, 우리네 일상사가 그 술에 녹아있다. 굳이 막걸리가 아니라,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유도, 막걸리 속에 우리네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左) 국가등록문화재 양평 지평양조장,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전통 제조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통주를 제조하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中)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제물로 올린 막걸리 (사진. 문화재청)
(右) 보물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천 속<점심>, 식사 중인 일꾼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는 막걸리
    문화재 지정도 한 동력이 되었겠지만, 요사이는 젊은 사람들의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2009년에 막걸리 붐이 일면서, 막걸리에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났고 이에 발 맞추어 막걸리에 대한 제도들이 바뀌면서 막걸리의 성장 동력이 생겼다. 막걸리에 과일을 20% 미만 넣을 수 있게 되고, 2016년에 음식점에서 양조장을 낼 수 있는 소규모주류제조 법령이 만들어지고, 2017년에는 지역 특산주로 빚어지는 막걸리를 인터넷으로 팔 수 있게 되고, 2020년에는 양조장에서 양조장으로 주문생산이 가능해지고, 한국술 소매점들이 연달아 생겨나면서 막걸리 생태계가 달라졌다.
    생산업체가 늘어나고, 다양한 막걸리가 만들어지고, 유통망이 넓어지고, 기획상품들이 만들어지면서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막걸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두어 해 넘게, 회식 문화가 사라지면서 술의 절대 소비량은 줄어들어 주점들이 고전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홈술 문화, 혼술 문화가 생겨나면서 브랜드를 따지고, 맛을 따지게 되면서 막걸리는 다양해졌다. 특히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우리 것, 생산자를 만나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지역 술에 관심 갖는 세대들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로 인한 반사 이익이 기도 하다. 막걸리에 자부심을 건 생산자들은 1달러, 1000 원대의 막걸리를 벗어나, 10달러, 100달러짜리 막걸리를 만들어 완판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헝겊 가방만 만들어온 격이라면, 이제 가죽 가방도 만들고, 신소재 가방도 만들게 된게 막걸리 시장의 상황이다. 외국에 거주 하는 한국인들도,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취미나 사업의 한 가지로 막걸리 빚기를 배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명동역에서 내려 남산자락으로 오르는 길에 막걸리학교가 있다. 막걸리학교 수강생의 분포를 보면 초창기는 은퇴 하고 귀촌하는 중년들이 주축이었으나 이제는 창업을 꿈꾸는 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에서 도 2021년 9월에는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막걸리 빚기 행사를 하고, 2019년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막걸리 빚기 행사를 가지면서, 외국에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 부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와 케이팝 문화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관심사에 막걸리가 추가된 것이다. 그들은 김치와 김치찌개를 섭렵한 사람 들이었는데, 새로운 한국문화를 좀더 빠르게 접하고 싶어하 는 이들이었다. 영화 미나리가 화제가 되자, 영국 런던에서 막걸리 제조장을 만들고 싶다면서 막걸리학교를 다닌 이는 미나리 막걸리를 만들면 충분히 주목받을 것이라고 했다.
    술은 낱병으로 돌아다닐 수 있지만, 술 문화는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한국은 일하면서 막걸리를 즐기는데, 너희 나라 전통술은 뭐냐? 너희 동네 술은 뭐냐? 라고 질문하면서 막걸리를 내미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와인을 즐기는 외국인들은 곧잘, 막걸리를 마실 때 어떤 잔에 마시며, 어떤 음식과 페어링하냐고 묻는다. 술은 술병과 술잔, 음식과 에티켓을 함께 데리고 다닌다. 그 안에 음악이 울려퍼 지고, 춤사위가 함께 한다면 문화의 영역은 더 넓어진다. 

 
(左) 막걸리 빚기에 사용되는 지에밥과 누룩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右) 발효 과정이 끝난 후 막걸리를 거르는 모습(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세계인이 맛을 공유하는 막걸리 기대
    문화재가 된 막걸리 빚기는 고정된 유산이 아니다. 음식의 맛처럼 끊임없이 변해가고, 새롭게 채워져 갈 것이다. 나는 막걸리 빚기가 세계에 퍼져있는 한글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의 좋은 컨텐츠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런 실험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세종학당의 초대로, 막걸리 특강과 실습을 하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태권도에 실려 차렷, 바로, 앞차기, 돌려차기 등의 한국어를 가르치듯이, 막걸리 빚기를 통해서 쌀, 누룩, 물, 빚다, 담다, 맛있다, 달다, 시다, 쓰다는 한국어를 익히고, 체험하고 맛까지 공유한다면 교육 효과가 높아질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이방인에게 가장 강렬하게 오래 기억시킬 수 있는 것은, 음식 맛과 향기이기 때문이다.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막걸리 빚기를 통해서, 어떻게 이웃들과 세계인들과 소통할 것인가? 흥미로운 삶의 지혜가 우리 앞에 하나 더 놓이게 되었으니, 막걸리 빚기의 기초 지식을 이제 알아두면 좋겠다. 막걸리 빚기는 아주 쉽고,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가 했던 솜씨이고, 쌀을 구할 수 있는 어느 곳에서든 만들 수 있고, 또 술은 나눠먹기 좋은 음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