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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숲 깊은 곳에 전해지는 마을숲과 고목의 옛 이야기

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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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숲 깊은 곳에 전해지는 마을숲과 고목의 옛 이야기
'충북의 숲과 나무?단양Ⅰ'

    마을의 안녕과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제의 민속이 고목과 선돌, 마을숲에 깃들어있다. 단양군 서쪽에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용바위봉, 단백봉, 금수산, 말목산 산줄기 기슭 몇몇 마을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 대강면 성금리 갈천별신제도 그것과 하나다. 사인암 남조천 소나무와 느티나무 고목들을 보고 찾은 단양읍 천동리, 수촌리, 마조리의 마을숲과 고목들도 소백산 기슭 숲에 둥지를 튼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대강면 사인암 부근 남조천 물가에 240년 정도된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선들배기 선돌과 안말(앞말) 다섯 그루 나무들
    용의 뿔처럼 솟은 두 개의 바위가 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어서 마을 이름이 각기리가 됐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바위가 있는 곳을 선들배기라고 불렀다. 선들배기 두 개의 바위는 선사시대 유물로,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공식 이름은 단양 각기리입석으로 충청북도기념물이다.
    선돌 뒤 마을 안쪽에 몇 그루의 나무가 모여 있는 게 보여 그쪽으로 향했다. 다섯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경로당과 마을회관 앞 빈터에 앉아계신 할머니들의 배경이다. 그중 한 그루 느티나무는 200년이 훌쩍 넘은 고목이다. 마을 안에 샘물이 있는데, 부정을 타면 진흙물이 난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따라 샘을 찾았다. 샘물은 산기슭에서 마을 도랑으로 이어지는 수로로 흘렀다. 샘물이 떨어지는 도랑을 거슬러 마을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배마루라는 마을이 나온다. 배마루에는 아버지를 지극하게 모신 효심 깊은 자식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배마루까지 갔다가 나오는 길에 본 풍경에 닭 우는 소리가 도랑물 소리와 어울렸다. 도랑 옆 지붕 낮은 낡은 집 흙벽에서 바람이 인다. 
    적성면 하리 소나무는 수령이 270년이 넘는다. 낮은 언덕 위 길가에 선 소나무가 당당하다. 나무 둘레에 돌을 쌓아 단을 만들었다. 둥그렇게 가지를 퍼뜨린 소나무 아래 진보랏빛 꽃이 피었다. 소나무 고목은 그 품에 든 생명을 다 안아줄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정초에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적성면 각기리 선돌. 선돌 뒤 마을에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사진 왼쪽) 그중 한 그루가 200년 넘은 느티나무다.
 
사인암 남조천의 고목들을 보고 성금리 마을숲에 도착하다 
    대강면 소재지에서 남조천을 거슬러 오른다. 남조천 바로 옆 사인암길로 접어들었다. 냇물을 가로지르는 새남교 가운데 서서 사인암을 상징하는 수직절벽 쪽을 본다. 푸른 물줄기, 곳곳에 드러난 커다란 바위와 자갈밭, 오른쪽은 숲이고 왼쪽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줄지어선 데크길이다. 그곳에 240년 정도 된 느티나무 고목들이 줄지어 있다. 느티나무 고목들이 만든 그늘 아래로 걷는다. 냇물 건너편에 있는 사인암 거대한 수직절벽이 점점 다가선다. 
    사인암은 남조천에 뿌리내린 거대한 수직절벽을 이르는 이름인데, 그 주변 물가 풍경을 아울러 말하기도 한다. 단양이 고향인 고려시대 사람 우탁이 지낸 벼슬 이름이 ‘사인(고려시대 종4품 벼슬)’이었다. 조선시대 단양 군수 임재광이 우탁을 기리기 위해 사인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인암 수직 절벽을 보고 출렁다리를 건넌다. 다리 왼쪽 물가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200년 넘게 살고 있는 나무들이다. 수십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앉을 정도로 넓은 두 개의 너럭바위 사이로 흘러온 물이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잔잔한 물에 비친 거대한 소나무 고목 두 그루의 반영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고려말 나옹선사가 창건한 청렴암으로 가는 길, 물에 비친 소나무 고목을 바라보는 출렁다리가 속세의 상념을 버리고 절로 들어가는 일주문이 아닐까? 
    청련암 마당을 지나 삼성각 쪽으로 간다. 수직절벽 사인암 뒤쪽 높은 곳에 삼성각이 있다. 바위 절벽 사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삼성각 자리는 조선시대 후기 문인화가 이윤영이 머물렀다는 서벽정이 있던 곳이다. 
    남조천 물줄기를 거슬러 도착한 곳은 대강면 성금리 마을 앞이었다. 마을을 감싼 산줄기가 남조천을 만나 잦아드는 곳에 240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와 서낭당이 있다. 태백산신인 단종대왕의 혼과 성금리 서낭여신의 합궁 형식으로 치러지는 갈천별신제를 이곳에서 지낸다고 한다.  
 
左) 단양읍 마조리 마을숲의 서낭당과 돌무지   右) 대강면 성금리 240년 느티나무가 있는 숲과 서낭당. 갈천별신제가 열리는 곳이다.
 
옛이야기 전하는 소백산 기슭 마을숲 
    단양읍 천동리, 수촌리, 마조리는 소백산 서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세 마을 모두 물이 많이 나는 곳으로 샘과 얽힌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고목과 마을숲이 있다.
    천동리 마을 위 산기슭 서낭당을 품은 소나무숲은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머문다는 당산 역할을 하는 듯했다. 그 숲에 400년 넘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어 당산의 신령함이 깊다. 천동리의 옛 이름은 샘골이다. 소백산의 수맥이 닿은 마을 샘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다고 해서 샘골이 됐다. 한자 이름인 천동 보다 샘골이 백배 낫다. 샘골 동쪽에는 달빛이 머문다는 마을, 달밭이 있었다. 
    수촌리의 옛 이름은 물안리다. 소백산 제2연화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에 안긴 마을, 물이 많아 물안리가 됐다. 마을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흙탕물이 흘렀다는 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마을을 300년 넘게 지키는 느티나무 고목이 한 그루 있다. 고목 옆에 130여 년 전 시부모의 병간호를 지극하게 했다는 효부를 기리는 비석이 있어 고목이 더 푸르게 보인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가리점(나무그릇)을 만들었다고 해서 가리점 마을이라 했단다. 지금은 마조리로 불린다. 마조리 어귀 마을숲은 서낭당과 돌무지를 품었다. 그 숲에 300년 넘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매년 정월 14일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제사를 지낸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는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신성성만 남기지 않았다. 마을숲 바로 옆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여름이면 마을숲 그늘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여름 복더위에는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마조리 마을숲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살가운 쉼터이기도 하다.